‘어두운’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
헤라클레이토스는 밀레토스에서 북쪽으로 수십 킬로 떨어진 에페소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이곳은 당시에 밀레토스와 함께 번성했던 항구도시였습니다.
전쟁은 일상화되었고 여러 문화와 거대 권력, 도시와 국가가 서로 충돌하였습니다.
그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을 지키는 사제 집안이자 에페소스를 건국한 가문의 장남이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정치 지도자가 되거나 최고의 사제로 살 수 있었지요.
그러나 헤라클레이토스는 부패한 정치를 지켜보며 정치가가 되는 삶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물려받은 모든 권리를 동생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는 매우 오만한 성격의 소유자이자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이어서 사람들을 멸시하는 데 선수였습니다.
하물며 그는, 자신은 어떠한 스승에게도 배운 적이 없다고 자랑했습니다.
대중을 경멸한 그는 자연히 시민이 통치의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를 혐오했습니다.
그의 글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난해하고 심오합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세상의 모든 것이 끊임없이 운동하며 변화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것을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panta rhei, 판타레이).”
우리의 경험적 관찰은 이것이 사실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는 어른이 되고, 늙어 가며, 결국 흙으로 돌아갑니다.
강철은 비에 녹이 슬고, 새것도 시간이 흐르면 낡은 것이 됩니다.
그의 말대로 세상 만물은 쉴 새 없이 변화합니다.
이처럼 끊임없는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은 ‘불’입니다.
모든 것을 재로 만들며 새롭게 충전되어 활활 타오르는 불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만물의 속성을 더욱 잘 드러냅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세계는 항상 살아서 타오르는 불이며 바다와 땅은 이 영원한 모닥불의 재”, 그리고 “상품을 금으로 바꾸고 금을 상품으로 바꾸는 것과 마찬가지로 만물은 불로 교환되는 물물교환 같은 것”이라고도 표현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변화를 추구한 철학자라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인식은 그를 오해한 것입니다.
그는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변화하지 않는 것을 추구했습니다.
불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는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세계입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그러한 변화를 일으키는 원리들이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 원리를 ‘로고스’라고 했습니다.
세계를 질서 있게 만드는 ‘법칙’ 혹은 ‘원리’로 사용합니다.
‘로고스’가 철학사의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하는 순간이지요.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하는 ‘로고스’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변화는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모두 대립적인 요소들입니다.
그중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행동은 굶주림, 전쟁, 질병, 죽음 등 불편하고 부정적인 상태를 몰아내고 싶어 하고, 마치 그런 상태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현재의 마치 없는 것처럼 여기는 것들도 실상은 드러나지 않은 채 대립적인 상태로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생명 자체에는 이미 죽음이 내포되어 있고, 어두운 밤의 뒤편에는 낮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은 플라톤 철학에 큰 영향을 줍니다.
더욱이 그의 철학은 고대보다 근현대 철학자들에 의해 더 높은 평가를 받게 됩니다.
근대 철학의 완성자라는 평을 듣는 헤겔은 ‘대립물의 통일’이라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을 기반으로 자신의 변증법 철학을 정립합니다.
존재의 철학자, 파르메니데스
그는 철학에서 가장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존재론, 즉 ‘형이상학’을 만든 사람입니다.
그가 바로 엘레아 출신의 파르메니데스입니다. 그의 철학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파르메니데스는 기원전 515년경에 이탈리아 남부에 있는 엘레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엘레아는 인구가 약 1,00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조용하고 한적한 항구도시였습니다.
좋은 가문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파르메니데스는 친구들에게 인심이 좋았습니다.
그는 뛰어난 정치가이자 입법자이기도 했지요.
진리의 길과 의견의 길
파르메니데스가 가고자 한 ‘진리’의 길은 무엇일까요?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변화’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계절과 자연의 변화, 인간의 생로병사 모두가 변화에 속합니다.
파르메니데스에 따르면, 생각한다는 것은 반드시 ‘있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있지 않은 것’은 생각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무언가를 생각한다는 것은 생각되는 어떤 것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고, 반대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생각의 대상조차 될 수 없으며 그에 대해 말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존재하는 것만이 있는 반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런 주장으로부터 어떻게 ‘변화는 없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을까요?
먼저, 고대 그리스인들이 생각하는 변화란 ‘생성’과 ‘소멸’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이 생기거나 반대로 ‘있는 것’에서 ‘없는 것’이 되는 거지요.
파르메니데스는 “있는 것은 생성되지도 소멸되지도 않으며, 나누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더 많이 있지도 않고, 더 적게 있지도 않은 하나의 연속적인 전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파르메니데스는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 있는 ‘의견의 길’이란 개념도 제시했습니다.
이것은, 존재는 생성되지도 소멸되지도 않는다는 주장과는 달리 생성과 변화를 믿는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변화를 믿는 것은 우리의 감각이 외부 세계에 현혹되어 “있는 것과 있지 않은 것이 같은 것으로, 또는 같지 않은 것으로” 뒤섞여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변화하지 않는 존재를 이해하는 이성理性만이 진리이며 그에 반해 생성, 소멸, 변화를 믿게 하는 감각적 경험이 오류의 근원이라는 것이지요.
사실 파르메니데스의 존재에 관한 이론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상식의 세계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이 화해할 수 없는, 진리와 의견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일은 이후에 등장하는 철학자들의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그랬던 만큼 파르메니데스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사상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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