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발견이나 이론 중에 코페르니쿠스의 이론만큼 인간의 영혼에 영향을 미친 것은 없다.” 괴테의 말처럼 우리는 놀라운 발견이나 엄청난 사건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부른다.
한마디로 기존의 패러다임을 깨뜨리는 혁명적인 인식의 전환이 바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인 것이다.
수천 년간 이어온 지구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태양중심의 세계관으로 도약했던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은 너무나 급진적이고 파괴적이어서 당대에는 핍박받고 배척당할 수밖에 없었다.
지구를 움직이게 하고 움직이지 않는 태양을 우주의 중심에 놓는, 본 연구의 가설은 새로운 것입니다.
새로움으로 인하여 이미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의심할 바 없이, 일부 학자들은 성질을 낼 것입니다.
지금까지 오랜 세월 동안 정돈되어온 학문에 느닷없이 파란을 일으키는 것은 잘못이라고 그들은 생각할 것입니다.
말이 새로움(newness)이지, 코페르니쿠스의 가설은 황당한 것이었다.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고요.’ 아침이면 동쪽에서 떠올라 저녁이면 붉은 노을을 물들이며 서산으로 지는 저 태양이 움직이지 않는단다.
아마도 과학의 이름으로 미치광이 같은 발언을 한 사람을 꼽으라면 코페르니쿠스 말고 찾기 힘들 것이다.
사실, 지구와 태양의 관계처럼 현상과 본질의 관계가 거꾸로 된 경우도 찾기 힘들다.
진리 인식에 인간의 감각이 결정적인 방해가 된 경우를 들라면 태양을 보는 사람의 눈이 대표적일 것이다.
그리하여 가시적인 세계는 모두 허상이요, 진리는 인간의 이성적 사유에 의해 포착되는 것이라는 플라톤의 철학을 가장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는 과학의 선례는 단연 태양중심이론일 것이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지구중심이론을 정립한 인물은 그리스의 대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유럽인들은 아리스토텔레스야말로 가장 위대한 철학자요, 철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밖에 없다는 견해를 공유하며 살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분법적 우주관에 토대한 지구중심이론은 또 교회가 인정하는 이론이다.
신은 이 우주의 창조주다. 그리고 자신의 형상을 본떠 인간 아담을 만들었다.
따라서 기독교적 세계관에 의하면 신을 닮은 인간이 거주하는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어야 한다.
해와 달, 온갖 별들은 지구의 영광을 빛내주는 장식물들이다.
만일 지구가 우주의 변방에 존재한다면 신의 창조는 별 볼일 없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중세의 교회는 이해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성적 사유가 가르쳐준 길을 따라 정직하게 이론을 작성해나갔다. 태양중심이론이 아무리 황당해 보일지라도 여기에는 거짓이 없다. 그는 담담하게 글을 쓴다.
고통스럽고 숙련된 관찰을 통해 천체 운동의 역사를 수집하는 것은 천문학자의 직업입니다.
또 천문학자는 자신의 마음에 드는 천체 운동의 원인과 가설을 설정한 다음 이 가정에 의거하여 과거와 미래의 천체들의 운동을 기하학의 원리로부터 도출해냅니다.
그런데 천문학자들은 어떤 방식의 추론으로도 천체 운동의 참된 원인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우주에 지구와 태양만 있었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지구중심이론을 우리는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우주에 항성들만 있었더라도 코페르니쿠스는 지구중심이론을 전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섯 개의 떠돌이별(wandering planets, 행성)이 사고 뭉치였다.
토성, 목성, 화성, 금성, 수성. 집 나간 자식이 부모를 괴롭히듯, 이 떠돌이별들이 우주를 방황하면서 천문학자들을 괴롭혀온 비행청소년 별들이었다.
행성들의 순행(progression)과 역행(retrogression) 현상이 오랫동안 천문학자들의 골머리를 썩였다.
목숨을 건 주장, 태양중심이론의 탄생
이 새로운 가설이 대중에게 공개되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낡은 가설들은 더 이상 개연성이 없습니다. 새 이론은 훌륭하고 쉽습니다. 또 막대한 분량의 관측 데이터가 있습니다.
1.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우주의 중심은 태양이다.
2. 지구와 태양의 거리는 지구와 별의 거리에 비해 아주 작다.
3. 별들이 뜨고 지는 것은 지구가 자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4. 지구의 자전축은 기울어져 세차운동을 한다.
5. 지구는 태양을 공전한다.
6. 모든 행성은 태양을 공전한다.
7. 행성들의 역행운동은 공전하는 지구에서 관측하기 때문에 보이는 겉보기 현상이다.
이것이 태양중심이론의 골자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중심이론에 관한 글을 처음으로 쓴 것은 1506년 이탈리아에서 공부를 마치고 폴란드로 귀국한 직후라고 전해진다.
이후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원고를 완성한 것은 1530년, 그의 나이 57세 때의 일이다.
다시 이 원고가 책의 형태로 세상에 공간된 것은 1543년, 그의 나이 70세 때의 일이다.
책이 나온 해 그는 숨을 거두었다.
36년 동안 비밀리에 간직해온 자신의 사상이 책이라는 물질적 형태로 전환된 것을 목격하고 죽었는지, 자신의 정신적 아들을 보지 못한 채 죽었는지, 사료들은 애매하게 전하고 있다.
지구중심의 천체 이론이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한 모든 단초는 행성들의 불규칙 운동 때문이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태양 가까이에서 빠르게 돌고 있고, 화성과 목성 그리고 토성은 태양에서 멀리 떨어져 천천히 돌고 있다고 생각하면 행성들의 불규칙한 운동을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음을 간파했다.
지구는 목성이나 화성, 토성보다 빨리 돌고 있기 때문에 이들 행성들을 뒤에서 따라가다가 앞서 가기도 하는 것이다.
뒤에서 따라갈 때는 행성들의 순행운동이 관찰되고 앞서 갈 때는 행성들의 역행운동이 관찰되는 것이다.
태양중심이론은 당시로서 매우 위험한 주장이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저서를 교황에게 바치면서 기나긴 고뇌의 과정을 이렇게 밝힌다.
올바름, 진리의 편에 서야 한다고 말하는 이 사람은 지금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코페르니쿠스의 책이 출간되고 나서 57년 후인 1600년 조르다노 브루노는 태양중심이론을 옹호한 죄로 화형에 처해졌다.
출간하자마자 무덤 속으로 도망가버린 사람, 코페르니쿠스. 그는 자신의 주장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1506년 이탈리아 유학을 마치고 태양중심이론의 연구에 몰두한 지 어언 36년, 이론의 윤곽은 진즉 완성했지만 출간할 마음은 먹지 않았다.
이대로 가면 얼마나 살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은 1542년, 숨을 거두기 1년 전의 일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피타고라스학파의 전례에 따라 자신이 발견한 저 아름다운 진리를 그냥 묻어두기로 결심한 지 36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
1543년에 출간된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 서적. 태양과 별이 지구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관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사실은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대담하고 획기적인 우주관을 전개함으로써 견고했던 중세의 우주관을 붕괴시켰다.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는 실제 관측 결과와 완전히 부합한 것은 아니었기에 이후 케플러, 갈릴레이, 뉴턴 등에 의해 계속 수정되고 보완되었다.
그러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변혁으로 불리는 ‘과학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것으로서 근대 과학혁명의 기초가 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든 위대한 저작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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