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철학자

[철학자] 피타고라스

cbc 2023. 5. 28. 02:35

인류는 언제부터 철학을 했을까? 최초의 철학자는 누구일까? 탈레스인가, 아낙시만드로스인가? 수많은 답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최초로 자신을 철학자라 부른 사람은 소크라테스도, 플라톤도, 아리스토텔레스도 아닌 피타고라스다. 피타고라스 정리(定理)로 유명한 피타고라스는 우리의 머릿속에 수학자로만 정리(整理)되어 있지만 사실은 서양철학의 비조였던 셈이다. 당시 최고의 선진문명들을 섭렵하고 그리스 철학을 한 단계 끌어올린 지식 수입업자, 만물의 근본을 파고들어가 수학이라는 위대한 질서를 발견한 1세대 수학자, 최초의 철학공동체를 만든 철학학교 교장. 그가 바로 피타고라스다. 서양인들의 세계관을 알고 싶다면 첫 번째 관문, 피타고라스의 세계로 들어가 보아야 한다.

 

그저 교과서에 나오는 ‘피타고라스 정리’의 주인공으로만 알려져 있을 뿐 그의 진면목은 여전히 비밀에 싸여 있다.

알고 보면 플라톤 사상은 피타고라스의 성취에 연원을 두고 있는데 말이다.

 

어린 피타고라스는 훌륭하게 컸다. 피타고라스는 쉬지 않고 자신을 수양했으며, 신체를 강건하게 단련했다.

밀레투스의 탈레스가 바로 피타고라스의 스승이다. ‘물은 모든 것의 제일원리’라는 명제로 유명한 탈레스.

그리스 자연철학의 아버지 탈레스는 기하학자이자 천문학자이기도 했다.

원에 내접하는 직각삼각형의 작도법을 발견한 이는 누구인가? 탈레스다.

그림자의 길이로 피라미드의 높이를 측정한 이는 누구인가? 탈레스다.

이등변삼각형의 두 삼각형은 서로 합동임을 증명한 이는 누구인가? 탈레스다.

그는 하지와 동지의 날짜를 예측했고 일식을 예언했다. 과연 피타고라스의 스승이었다.

 

탈레스는 피타고라스에게 이집트로 가서 공부할 것을 권했다.

20년 동안 이집트 역사가 전승해온 비밀을 배운다.

이집트어로 된 모든 학문, 수학과 의학, 건축학과 음악, 천문학과 기하학에 통달했다.

피타고라스가 이집트에 체류한 지 23년째 되던 해에 페르시아가 이집트를 침략했다.

페르시아의 침략은 이집트에겐 재앙이었으나 피타고라스에게는 행운이었다.

피타고라스는 포로가 되어 바빌론으로 이송되었다.

당시 페르시아는 초강대국이었다.

피타고라스는 3000년 동안 축적된 이집트문명을 페르시아 학자들에게 전해주었고, 그 대신 5000년 동안 축적되어온 메소포타미아문명을 마기들로부터 배웠다.

바빌론에서 12년을 보낸 피타고라스는 56세의 나이로 ‘현자’가 되어 귀향한다.

그러니까 피타고라스는 고대의 찬란한 두 문명, 바빌로니아문명과 이집트문명을 그리스인들에게 전해준 문명의 전도사였다.

 

최초의 철학 공동체를 세우다

 

 

피타고라스가 공동체 학교를 세운 곳은 이탈리아의 크로톤이었다.

피타고라스가 탄 배가 항구에 닻을 내리자 소문은 금세 퍼졌고 현자를 보기 위해 군중이 몰려들었다.

젊은이들은 부모에게 피타고라스의 연설을 전했고 어른들은 피타고라스를 초청하여 또 연설을 들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몰려왔다. 2000명의 남녀가 자신의 가족과 함께 피타고라스의 제자가 되길 희망했다.

그렇게 피타고라스의 철학 공동체가 탄생했다.

 

철학 공동체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먼저 자신의 전 재산을 공동체에 내놓아야 한다.

그들은 재산을 공유했다. 처음 3년의 수업 기간은 청강생 시기다.

청강생은 스승의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하고, 스승의 육성을 커튼 너머로 들어야 한다.

학식을 쌓고 인성을 연마해서 시험을 통과해야만 본격적인 제자가 될 수 있다.

온화와 겸손 그리고 과묵이 피타고라스가 요구한 덕목이었다.

성품이 거친 자, 오만한 자, 시끄러운 자는 제자가 될 수 없었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은 공동체를 떠나야 했다.

첫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은 다시 5년 동안 묵언 생활을 한다.

이렇게 두 차례의 시험을 거쳐야만 정식 제자가 된다.

내게 배운 것을 발설하지 마라! 비밀을 지키지 않으면 암살된다.

비밀 엄수! 이것이 피타고라스 공동체의 규율이었다.

피타고라스의 제자들은 스님들처럼 수도생활을 했다.

잠들기 전에 오늘 내가 한 일을 세 번 돌아보라.

오늘 내가 잘한 일은 무엇이고, 잘못한 일은 무엇이며, 또 끝내지 못한 일은 무엇인가?

이것이 피타고라스 공동체가 요구한 생활 규율이었다.

피타고라스의 제자들은 숲과 개울을 거닐며 명상한다. 체조로 몸을 다진다.

철학과 수학으로 정신을 훈련한다.

 

 

 

만물은 수로 이루어진다

 

 

윤회 사상에 의하면 영혼은 몸을 바꾸어가며 떠돈다.

혼이 윤회의 쇠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혼이 정화되어야 한다.

혼의 정화를 위해서는 먼저 우주적 질서를 알아야 한다. 

피타고라스는 마음을 정화시키는 리듬과 멜로디를 부지런히 찾았다.

피타고라스 공동체에 소속된 사람들은 매일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음악을 들었다.

그들에게 음악은 영혼을 정화하는 방편이었다.

우주를 처음으로 코스모스(cosmos)라고 부른 사람 역시 피타고라스였다.

피타고라스는 별들의 배열과 움직임에도 수적 비례가 성립함을 탐구했다. 우주는 순수한 수의 세계였다.

오직 이성적 사유를 통해서만 지각될 수 있는 수의 세계 말이다.

피타고라스는 선포한다. 세계는 수다.

수학은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를 잇는 다리다.

수학은 자연을 이해하는 학문일 뿐만 아니라 자연 너머에 있는 신적 존재와 소통하는 수단이었다.

그는 수학을 통해 불변의 실재에 대해 숙고했다.

 

물질은 유한하나 지식은 무한하다.

물질적 자산은 남에게 주면 줄어들지만 지적 자산은 남에게 주어도 없어지지 않는다.

지식은 남에게 줄수록 더 명확해지고 풍부해진다.

지식은 영원하다. 

지식은 이웃을 배려하고 인류에게 도움을 준다.

 

코페르니쿠스가 출현하기 이전 사람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한 이들이 있었다.

바로 피타고라스학파의 사람들이다.

‘태양은 우주의 불이며,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한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지구가 자전하기 때문에 낮과 밤이 생기고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져 계절의 변화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좋으랴.

피타고라스학파의 태양중심설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설에 밀려 이후 2000년 동안 망각된다.

16세기가 되어 코페르니쿠스가 등장하고 나서야 태양이 다시 우주의 중심이 된다.

근대 과학혁명의 배후에는 피타고라스가 있었다.

 

피타고라스의 유산

 

 

플라톤의 대화편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들 중 다음과 같은 것들은 피타고라스학파로부터 전승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서양철학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피타고라스만큼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없다.

플라톤의 철학을 분석하면, 모두 피타고라스의 철학이 되어버린다.

지성으로는 파악되지만 감각으로는 파악되지 않는 영원한 세계, 이데아의 세계는 피타고라스로부터 비롯된다.”

서양 과학문명의 원조는 피타고라스였다.

각도의 크기에 따른 직각삼각형의 두 변의 관계를 말해주는 ‘사인(sine)’과 ‘코사인(cosine)’ 역시 피타고라스 정리에 토대한다. 원의 방정식을 ‘x2+y2=r2’으로 표기할 수 있는 것도 피타고라스 정리 덕분이다.

그렇다면 소리의 운동, 빛의 운동은 뭐냐? 모두 파장(wave) 운동이다.

전파도 파장이다. 그런데 사인과 코사인이 아니었다면 파장의 운동을 수학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이나 했겠는가?

현대의 전파 문명 저 깊숙한 곳에도 피타고라스의 발견이 의연히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도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활용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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