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역사를 바꾼 수많은 사과들이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사과도 뉴턴의 사과만큼 역사의 흐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발견했다는 만유인력의 원리는 근대과학의 완성이었다.
태어나기 두 달 전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신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가 재혼해 집을 나간다.
뉴턴의 나이 세 살 때의 일이다. 아이에게 어머니는 하늘이다. 하늘이 떠나간 것이다.
재혼하여 떠난 어머니가 다시 뉴턴의 곁으로 돌아온 것은 뉴턴의 나이 열네 살 때의 일이었다.
어머니는 뉴턴에게 농사일을 맡긴다.
뉴턴을 다시 학교에 보내 학업을 연마하도록 어머니를 설득한 이는 삼촌 제임스였다.
3년 만에 학교에 복학하여 졸업을 하고 마침내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하여 학문 탐구에 열중하기까지 뉴턴이 걸은 길은 외로운 고학의 길이었다.
흑사병은 1665년 런던을 다시 강타했다.
대학 도시 케임브리지는 휴강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면학 중이던 뉴턴도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시골로 피신했다.
뉴턴 자신의 기록에 의하면 이때 뉴턴은 수학 분야에서 엄청난 진보를 이룩했다고 한다.
1664년에서 1665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뉴턴은 무한급수의 해법을 발견하여 쌍곡선의 면적을 계산했으며, 1665년 5월 20일에는 유율법, 즉 미적분을 최초로 발견했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
뉴턴이 중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정규 학문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의 삼촌 덕택이었다.
이 점은 아홉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삼촌 밑에서 자란 코페르니쿠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뉴턴의 천재성이 실현되는 데는 삼촌 외에도 스승 아이작 배로의 공로가 컸다.
배로는 넘치는 사랑과 지혜로 뉴턴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인물이었다.
배로는 유머와 배짱을 가진 자존심 강한 인물이었으며 어려운 시대의 정치적 투사였다.
또한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시를 지을 정도로 고전어에 박식했다.
기독교인이자 평화주의자였고 학생들에게 케플러, 갈릴레이, 코페르니쿠스, 데카르트의 원전을 읽도록 자극하고 권고했던 스승이었다.
배로는 뉴턴이 자신보다 유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1669년 자신의 교수직을 뉴턴에게 물려주었다.
스티븐 호킹도 역임했던 바로 그 자리다.
뉴턴의 사상적 스승은 세 사람이다.
갈릴레이와 케플러와 데카르트가 바로 뉴턴의 사상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과학자들이다.
뉴턴은 대학에서 갈릴레이의 역학, 케플러의 광학과 천문학, 데카르트의 기계적 철학, 광학과 기하학 저술을 파고들었다. 특히 자연현상을 물질과 운동으로 설명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비판한 데카르트의 기계적 철학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이 세 명의 사상적 스승을 뉴턴에게 연결해준 사람이 바로 배로였다.
만유인력의 씨앗
지구가 사과를 당기는 중력을 뉴턴이 처음 발견한 것은 아니다.
고대에도 지구의 중력 개념은 상식에 해당하는 지식이었다.
갈릴레이는 지구의 인력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냈다.
뉴턴의 천재성은 사과의 낙하에 작용하는 중력이 저 멀리 떠 있는 달에까지 미쳐, 달의 공전운동을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데 있다.
사태의 본질은 이러한 것이었다. 뉴턴의 천재성이 불꽃을 튀기던 그 순간을 굳이 몇 마디 말로 옮겨보자.
행성들이 태양의 주위를 도는 이유는 뭘까? 행성들은 왜 직선궤도를 그리며 태양 주위에서 떨어져나가지 않는가? 끈에 공을 매달아 돌릴 때처럼 매 순간 직선 경로로 이탈하지 않도록 궤도 가운데에서 물체를 당기는 힘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 힘은 태양에서 나올 것이다. 달도 지구 주위를 공전한다. 그렇다면 달을 공전하게 하는 힘은 지구에서 나올 것이다.
어?! 방금 사과 한 개가 땅에 떨어졌다. 지구가 당겼기 때문이다. 그러면 지구의 영향은 얼마나 멀리 뻗칠까? 지구의 중력은 어디까지 어떻게 미치는가?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여행하듯 달이 지구 주위를 무한히 돌도록 강제하는 이 힘의 작동 방식은 무엇인가?
지구의 중력은 모든 거리에서 동일하다고 가정할 수 없다. 이는 분명하다. 중력은 지구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거리가 늘어나면 중력은 약해져야 한다. 이렇게 줄어드는 정도는 얼마나 될까? 한 물체가 다른 물체보다 지구 중심으로부터 두 배 멀리 있다고 가정하자. 지구가 이 두 물체에 미치는 인력의 관계는 무엇인가?
자연 문제의 해법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문제 자체의 정식화다.
뉴턴은 그의 문제를 대가다운 솜씨로 정식화했다. 이제 해법을 공략하는 것만 남았다.
중력의 당김은 거리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가? 한 점으로부터 중력이 모든 방향으로 발생한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그 점을 중심점으로 하는 두 개의 구를 가정하자. 한 구의 반지름은 다른 구의 반지름의 두 배다. 동일한 중력의 영향이 두 개의 서로 다른 구의 표면으로 확장한다. 그런데 반지름이 두 배인 구는 작은 구에 비해 표면적이 네 배 넓다. 따라서 큰 구의 표면에 미치는 중력은 작은 구의 표면에 미치는 중력의 4분의 1이어야 한다. 이는 역제곱 법칙으로 일반화된다. 중력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이상의 생각이 뉴턴의 마음을 스치고 지났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의 문제들을 보는 뉴턴의 시각은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한 양동이의 이론적 논증보다 한 컵의 관찰, 실험적 증명이었다.
뉴턴의 과학적 연구 전체에 걸쳐 이런 특성이 나타난다.
뉴턴은 중력 법칙을 정당화해줄 관찰의 근거를 찾았다.
50년 전에 발견되었으나 아무도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던 케플러의 제3법칙이 뉴턴이 찾던 증거였다.
천재는 없다
뉴턴의 천재적 발견은 오직 피나는 노력, 무서운 집념, 성실한 연구의 정직한 결과일 뿐이다. 우연은 없다.
뉴턴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재학할 당시 자신이 읽은 책의 내용을 노트에 적어놓기로 유명했다.
뉴턴은 읽은 내용을 그저 요약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았다.
읽은 내용을 요약하고, 더 나아가 그것이 사실일 때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결과들을 기록했으며,
그것을 실제 자연현상과 비교해 맞는지 틀린지를 확인했다.
잠은 네댓 시간밖에 자지 않았고 직접 반사망원경을 만들기도 했다.
색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뜨개질바늘로 자기 눈을 찌르기도 하고 연금술을 연구하면서 중금속과 독극물을 먹기도 했다.
자연의 신비에 취한 청년은 자만할 틈도 없었다.
진리의 바다 앞에 선 소년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스물세 살의 이 젊은이를 보아야 한다.
그는 순수한 천재성으로 천체의 비밀을 착안해냈다.
행성운동의 비밀을 완전히 드러낼 계산법을 밝혀냈다.
하지만 자신의 이론이 옳다고 결론내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계량적 탐구에서 16퍼센트나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천재의 성취가 지적 무모함과 뒤섞이면 안 된다.
뉴턴은 발견을 떠벌리지 않았다. 그냥 묵혀두었다.
그는 신중한 완벽주의자였다.
뉴턴은 일생 동안 수많은 논쟁에 휘말릴 때마다 격분하기 일쑤였고 괴팍한 면도 많았다.
하지만 자신이 이룬 것에 대해선 겸손했다.
“제가 다른 사람보다 좀 더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이다. 코페르니쿠스에게서 태양을 가져왔고, 케플러에게서 제3법칙을 가져왔고, 갈릴레이에게서 역학을 가져왔고, 데카르트에게서 관성을 가져왔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그저 남의 것을 모으는 데 그친 사람이 아니었음을 안다.
그는 물리학 전체에 질서를 부여한 유일한 사람, ‘신의 두뇌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뉴턴의 진짜 천재성은 무엇일까? “제가 남들과 특별히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의문이 생긴 문제에 몰두하여 그 문제가 완전히 풀릴 때까지 생각해내는 능력, 그것일 겁니다.”
인간은 유한하고 세계는 무한히 복잡하다.
뉴턴은 고백한다.
“저는 제 앞에 펼쳐진 저 거대한 미지의 바닷가에서 예쁜 조약돌이나 조개껍데기를 주우며 좋아하는 소년일 뿐입니다.”
우주라는 바다에 살았던 한 천재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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