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철학자

[철학자] 국가의 주권자는 인민이다 - 루소

cbc 2023. 5. 26. 21:33

 

 

출 생 : 1712~1778
대표저서 :  사회계약론
작업 : 사상가, 교육학자, 소설가, 작곡가, 철학자
학파 : 계몽주의

 

“왜 국가(왕)가 존재하는가?”

“왜 국가(왕)에게 복종해야 하는가?”

 

 

만약 왕에게 복종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 녀석은 모두의 평화를 저해하는 대역죄인이다!

그런 불경한 자는 바로 붙잡아 단두대 앞에 세워 참수형에 처할 필요가 있다.

왕은 ‘모두의 평화를 위해’ 존재하는 절대적 지배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민중은 왕에게 결코 거역할 수 없다.

지금까지 인류는 이런 식으로 왕에게 대적하는 자를 배제하고 몇천 년 동안 왕정국가라는 구조를 이어왔다.

그러면 이러한 왕정국가 안에서 모두가 행복해졌을까? 유감스럽게도 현실 역사를 볼 때 그렇지는 않다.

 

예를 들어 18세기 왕정 프랑스에서는 인구의 2퍼센트에 불과한 왕족과 특권계급이 사치를 누리는 한편, 민중은 빈곤에 허덕이는 불평등한 상황이 벌어졌다.

98퍼센트의 민중이 내는 세금으로 성립한 국가에서 2퍼센트의 특권계급이 세금도 내지 않고 많은 연금을 타면서 유유자적한 생활을 보내고 있던 것이다.

이상한 일이 아닌가. 홉스에 따르면 인간은 상호 간의 평화를 위해서 국가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래서는 왕과 그의 측근만이 사치를 누리기 위해서 국가를 만든 것처럼 보인다.

그런 국가는 특권을 가진 소수가 시민에게서 세금을 효율적으로 착취하기 위한 착취 시스템에 불과하다.

 

인민주권

 

하지만 그때 프랑스의 철학자 루소가 홉스의 사회계약설에 반론하는 사상을 발표했다.

루소의 인간관은 홉스와는 정반대였다.

그에 따르면 본래 인간은 국가가 없이도 서로 도와가며 살 수 있는 평화로운 생물이다.

하지만 지혜를 지닌 소수가 나타나 타자를 착취해서 편하게 사는 법을 배웠다.

그 때문에 국가나 신분 같은 구조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러한 루소의 인간관에 따르면 국가는 인간에게 결코 필수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리고 만약 국가가 필수가 아니라면 민중은 국가(왕)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홉스의 사회계약설은 완전히 다른 결론으로 귀결된다.

 

“대다수의 행복을 가져오지 못하는 국가는 해체하고 좀 더 나은 국가를 새롭게 만들면 되네.”

 

다시 말해 왕에게 거역하고 혁명하라는 결론이다.

루소의 주장대로 인간에게 국가가 필수적이지도, 절대적인 존재도 아니라면 민중은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국가 따위 필요 없어” 하며 국가를 포기할 당연한 권리가 있다.

일부러 자신들의 목을 죄는 국가를 따를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왕이나 귀족에게는 모인 세금을 적절히 운용해서 민중에게 행복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그들에게 부여된 지위나 특권 등은 타고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래 세금은 모두를 위해서 쓰이는 것이며, 왕이나 귀족은 그것을 잠시 맡아두고 있을 뿐이다.

결코 그들이 멋대로 사용할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니다.

결국 이러한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 민중은 국가(왕)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지만 국가(왕)는 민중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민중과 국가(왕), 둘 중 누가 주인이고 누가 진정한 권력자인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루소는 “진정한 권력자는 왕이 아니라 민중이다”라는 인민주권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리고 국가(정부)를 “진정한 권력자인 민중에게 권력을 위임받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하나의 기관에 불과하다”라고 재정의했다.

기관이 무능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본래의 권력자인 민중을 위해서 일하지 않는다면 권력의 위임을 취소하고 해고해버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루소가 이러한 주장을 했던 시기는 여전히 왕이나 귀족 같은 특권계급이 국가를 지배하고 강권을 흔들던 시대였다.

그렇기 때문에 루소의 주장은 상당히 용기가 필요했다.

실제로 루소는 이런 과격한 발언이 원인이 되어 체포령이 내려지고 스위스로 망명한다.

 

루소

의 대역전 인생

 

원래 그는 별 볼 일 없는 예술가 지망생이었다.

애인 사이에 낳은 다섯 명의 아이를 차례로 버리거나 부녀자 앞에서 엉덩이를 까 보이는 등, 품행 단정과는 거리가 먼 노출광에 형편없는 인간이었다. 

이렇게 엉망인 루소였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 놀라운 재능이 있었다.

대중을 울리고 끄는 감상적인 문장을 쓸 수 있는 재능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재능을 자각하지 못했던 듯하다.

 

하지만 40세 가깝게 나이를 먹은 어느 날, 그 앞에 지금까지의 인생을 180도 바꿔버린 굉장한 전기轉機가 찾아온다.

정말 대수롭지 않은 일시적인 생각이었다.

루소는 거리에서 본 논문 공모전에 자신의 작품을 응모해본다.

그 공모전의 주제는 ‘문명이나 과학의 발달이 인간의 생활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였다.

때마침 과학의 성과가 모두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데 큰 공헌을 하기 시작한 시대였기 때문에 아마도 많은 응모자들은 “인간의 지혜는 놀랍다! 과학은 굉장하다!” 하고 찬미하는 내용을 썼을 것이다.

그에 반해 루소는 “인간은 지혜 때문에 타자를 속이고 서로 다투는 것이다!”라고 정서적으로 호소하는 듯한 정반대의 내용을 썼다. 그 작품이 멋지게 수상하고 그는 일약 화제의 인물이 됐다.

오늘날로 말하면 무직에 도착적인 성벽을 지닌 40대 백수가 갑자기 문학 대상을 탄 것과 같은 일이다.

이 수상을 계기로 루소의 인생은 역전 상황에 돌입한다.

그는 계속해서 히트작을 쓰고 민중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작품을 내놓았다.

 

루소는 다섯 명이나 되는 아이를 만들고서는 모두 버린 주제에 《에밀》이라는 교육론과 관련된 책을 썼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책의 내용은 매우 뛰어나 현재도 교육계의 필독서로 꼽히고 있으며, 루소는 교육학의 아버지로까지 칭송받고 있다. 현실의 루소는 완전히 교육자 실격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루소가 그렇게까지 평가받을 수 있던 것은 역시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일반적으로 교육론 책이라고 하면 ‘아이의 교육은 이렇게 해야 한다’ 같은 제목이나 이론이 죽 쓰여 있을 뿐이어서 읽으면 졸음이 오는 책이라는 인상이 있다.

하지만 루소의 손을 거치면 전혀 다른 서적이 된다.

루소의 교육론 《에밀》은 어느 교사가 에밀이라는 이름의 소년과 만나 그 아이가 성장해서 결혼할 때까지 진행하는 교육과정을 이야기 형식으로 푼 책이다.

 

루소는 책 속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게 만드는 잔혹한 교육을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 것인가!”

 

이 책은 다 너의 장래를 위해서라며 지금 현재 아이로서 누릴 행복을 빼앗아 일을 가르치고, 빨리 어른으로 만들고자 하는 교육의 모순을 지적한다.

또한 루소는 근원적 교육의 문제점을 확실히 짚어 설명하고 에밀을 배려하면서 어떻게 해야 에밀이 행복한 유년시기를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한 것을 썼다.

 

“나는 에밀이 상처받지 않도록 신경 쓰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 루소는 상처받지 않고 성장하는 것이 오히려 곤혹스러운 일이며, ‘상처받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배워야 하고 가장 필요한 경험이라 생각했다.

 

교육론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독자를 의식해 정서적 연출을 더한 그의 책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 수밖에 없었다.

덧붙여서 당시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는 엉뚱한 소리를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아마도 그 이야기의 진원지는 루소인 것 같다.

다양한 설이 있지만 실제로 그의 저서에 이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어쨌든 인격적으로는 상당히 엉망이었던 루소였지만 그가 쓴 책의 재미는 뛰어났기 때문에 책을 통해 그의 사상이 민중에게 많이 알려졌다.

그러자 당시 권력자였던 왕 루이 16세와 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곤란해졌다.

여태까지는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무리 궁정에서 낭비를 하든 호화로운 가면무도회를 열든 왕족이라는 이유 하나로 넘어갈 수 있었지만 루소의 인민주권 사상이 민중 사이에 퍼지자 더 이상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력이 기울고 모두가 가난으로 고통받는 시기에 저 바보 같은 왕비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결국 민중은 분노한 나머지 왕인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체포해 재판을 열고 비료 운반용 마차에 태워 구경거리로 만든 다음 단두대에서 공개 처형했다.

이것이 바로 민중이 혁명을 일으켜 왕을 공개 처형한, 세계사의 상징적 사건인 프랑스 혁명이다.

하지만 혁명이 민중을 행복하게 만들었냐고 묻는다면 전혀 그렇지도 않았다.

지위나 재산과는 상관없이 모든 남자에게 선거권을 인정하는 민주적 개혁은 있었지만, 실권을 쥔 의회 사람들이 파벌 투쟁을 벌여 서로를 방해해 국가를 잘 제어할 수 없었다.

그 결과 프랑스는 내란을 겪고 다른 나라의 공격을 받아 엉망진창 상태가 된다.

 

그때 당당히 나타난 자가 영웅이자 전쟁 천재 나폴레옹이다.

그는 또 다시 혁명을 일으켜 화려하게 정권을 빼앗는다.

그리고 연전연승으로 적대 세력을 쓰러뜨리고 국가를 하나로 규합했다.

그러자 민중은 “나폴레옹 최고! 만세!” 하고 갈채를 보내고 결국 나폴레옹은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이리하여 역사는 반복되고 인류는 진정한 인민주권을 알기까지 좀 더 기다려야 했다.

어쨌든 이 일은 제쳐두더라도 “국가란 공공의 이익을 제일로 생각하여 운영되는 민중을 위한 기관이다”라는 지금까지 이어지는 국가관을 민중에게 퍼뜨린 루소의 공적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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