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철학자

[철학자] 근대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

cbc 2023. 5. 26. 21:12

 

절대적인 진리는 그렇게 간단히 발견되지 않았다.

그동안 역사는 그리스도교가 서양을 지배하는 중세시대로 돌입하고 “인간은 이성만으로는 진리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신앙심이 필요합니다”라는 방향으로 사상이 나아갔다.

 

그러나 그 후 르네상스 종교개혁이 일어나 교회의 권위가 차례로 약해졌다.

그리고 과학이나 수학 같은 학문이 발전하기 시작하고 인간의 이성을 찬양하는 근대시대로 진입했다.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은 다시 말해서 ‘신앙을 중시하던 시대’에서 ‘이성을 중시하는 시대’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이를 계기로 인류는 또 다시 이성을 통해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7세기에 이성의 힘을 통해 절대적인 진리를 손에 넣고자 한 철학자, 데카르트가 나타났다.

 

데카르트라고 하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로 유명한 철학자지만,

실은 그는 수학자로서도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다. ‘x축, y축의 2차원 좌표 체계’는 누구라도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좌표가 데카르트가 고안한 데카르트 좌표 체계다.

수식을 도표나 그래프같이 시각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좌표 체계라는 발상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명이었다.

여기서 잠깐 화제를 바꿔 본디 수학이란 무엇인지 알아보자.

매우 간단하게 말하면 수학은 우선 맨 처음에 공리라 불리는 절대적으로 올바른 기초적 명제를 몇 개 가정하고, 거기에서 논리적인 절차로 정리를 알아가는 학문을 뜻한다.

 

본디 지금까지의 철학에서는 철학자들이 “나는 이렇게 생각해”, “아니, 난 이렇지 않을까 생각해”라며 자기 멋대로 서로 주장할 뿐이었다.

철학자마다 다양한 ‘○○주의’나 ‘○○설’을 주장했고, 철학은 수학이나 과학처럼 통일적인 학문으로서는 성립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철학이 ‘사람에 따라 다른 제멋대로인 생각’ 따위가 되어버릴 뿐이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철학도 수학처럼 누구나 올바르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확실한 것’을 우선 제1원리(공리)로 설정하고, 논리적인 절차로 결론을 도출함으로써 철학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면 지금까지 사람마다 달랐던 철학을 누구나 같은 결론에 도달하고 누구나 올바르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유일한 궁극의 철학으로 진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데카르트의 생각은 매우 훌륭하고 야심적인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궁극의 철학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이것은 틀림없어! 절대적으로 옳아” 하고 만인이 인정할만한, 공리가 될 제1원리를 발견해야만 한다.

이러한 제1원리를 ‘진리’라고 바꿔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리는 어떻게 찾으면 좋을까? 미리 말해두지만 제1원리를 발견하는 작업은 매우 진중하게 이뤄져야만 한다.

출발점인 제1원리가 틀리면 거기서 도출되는 정리도 틀린 것이 되고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학의 기반으로서 제1원리를 설정하는 명제는 ‘정말로 확실하고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진리’여야만 한다.

 

데카르트는 진리에 대해 평생 생각했다.

그가 위대한 점은 ‘확실하고 올바른 진리’를 직접 찾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우선 모든 것을 의심하는 전략으로 진리를 찾아내려고 한 점이다.

즉, 그는 아무리 의심해도 의문점을 찾아낼 수 없는 것’이 진리의 조건이라 생각했다.

 

그는 “그게 정말로 올바른가? 의심스럽군”이라 말하며 이 세상 모든 것에 의혹의 폭탄을 던졌다.

그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의심했다. 너무 의심한 나머지 눈앞의 현실조차도 의심했다.

눈앞에 사과가 있다고 치자. 그럼 데카르트는 내 눈앞에 있는 사과가 과연 진실일까 의심했다.

그는 실은 꿈을 꾸고 있을 뿐이고, 사과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되면 무엇을 봐도 그것이 진실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면 수학이나 논리는 어떨까? 이런 것은 누구나 올바르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까?

아니, 수학이나 논리를 의심하는 것도 가능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꿈을 꾸고 있을 때 논리적으로 이상한 일이 일어나도 눈치채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학이나 논리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저 착각일지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면 수학이나 논리도 확실히 올바르다고 말할 수 없다.

 

이렇게까지 의심해버리면 이제는 올바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

명백한 의심의 과잉. 그런데도 데카르트는 철저히 의심을 이어갔다.

그럴 때의 그는 틀림없이 ‘세계 제일의 진리를 추구하고 세계 제일의 진리를 의심한 철학자’였다.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의심한다면 과학도 논리도 수학도, 그 무엇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완전한 폭거. 하지만 의심의 과잉이라는 폭거가 기적을 만들어낸다!

어느 날 아침저녁 없이 오로지 의심만을 이어가던 데카르트에게 갑자기 하늘의 계시 같은 생각이 떠오른다.

 

“우리의 인식은 모두 거짓일지 모른다……. 그리고 모든 것을 의심하는 일이 생긴다…….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의심한다 해도 그것을 ‘의심하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만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지 않은가! 만약 ‘의심하는 나’의 존재를 의심한다고 해도, 역시 ‘의심하는 내’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야!”

 

모든 것이 꿈이었다 해도, 그 꿈을 꾸면서 이것이 꿈은 아닐까 의심하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그 사실 자체는 결코 의심할 수 없다.

환영으로 보이는 악령도 처음부터 ‘환영을 보는 행위’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환영으로 보일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결국 어떤 의혹에도 끄떡없는 것, 그것은 바로 ‘의심하고 있는 자기 자신’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모든 것이 거짓이라 해도 그것이 거짓이 아닐까

‘내(자신)가 생각하는’ 이상, ‘내(자신)가 존재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확실하다.

이렇게 데카르트는 철학의 기반이 되는 ‘절대적으로 의심할 수 없는 진리’를 도출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