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문제
플라톤은 평생 약 35편의 책을 남겼는데, 거의가 대화체로 서술했습니다.
대화체는 비록 문자의 형식을 지니고는 있지만,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마치 소크라테스와 그 밖의 많은 인물들과 함께 토론하는 것 같은 생생한 현장감과 긴장감을 제공합니다.
‘엄친아’ 플라톤, 철학자의 길을 가다
플라톤은 전통적 가치 체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는 아직 요원한 시대에 살았습니다.
특히 스파르타와 아테네 사이에 벌어진 길고 긴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두 국가가 동시에 몰락하는 서막이었습니다.
아테네는 정치적, 도덕적으로 타락하였고 그에 환멸을 느낀 플라톤은 현실 정치와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그러던 차에 플라톤을 평생 철학자의 길로 인도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소크라테스에 대한 재판과 사형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플라톤은 28살에 철학 여행을 떠나, 이집트부터 지중해 연안 국가들을 돌아다니면서 철학을 배웁니다.
완전한 세계, 이데아를 꿈꾸다
플라톤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꼭 알고 넘어가야 할 산이 있습니다. 바로 ‘이데아론’이라고 불리는 산입니다.
이데아는 그리스어 ‘이데인idein’에서 나온 말로 원래는 보이는 것, 곧 형태나 모양을 뜻하는 말입니다.
플라톤은 우리가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세계, 즉 변화하는 ‘현상계’와 영원히 변화하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이데아 (형상)’의 세계를 구분합니다.
현상계는 인간의 감각을 통해 알 수 있는 세계를 말합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만져서 알 수 있는 감각의 세계이지요.
그러나 이데아의 세계는 오직 이성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이데아’란 어떤 사물이 가지고 있는 가장 완전한 상태나 모습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바나나를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바나나를 보면서 노랗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이미 ‘노랗다’라는 색 기준이 있지 않으면 저 싱싱한 바나나를 노랗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바나나는 쉽게 상하게 마련이고 결국은 검은 색을 띄다가 썩게 되어 더 이상 바나나라고 할 수 없는 물체로 변합니다. 그렇다면 노란색에서 변해 가는 바나나를 보면서 어디까지가 노란색인지 판단할 수 있는, 어떤 변하지 않는 기준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 기준을 바탕으로 기준에서 벗어날 경우에 더 이상 노란색이 아니라고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지요. 그 기준이 ‘노랑의 이데아’입니다.
이렇듯 플라톤은 세상의 모든 것에는 완벽하고 불변하는 본보기가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데아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데아의 세계에 존재합니다.
왜냐하면 현실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참된 이데아의 세계인 실재 세계를 어느 정도 나누어 가지고 있는 현상 세계입니다.
이것을 플라톤은, 이데아가 영원하고 불변하는 사물의 원형인 반면에, 현실의 사물은 그의 모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플라톤의 동굴 비유
플라톤은 인간을 어릴 때부터 어두운 동굴에 감금된 죄수에 비유합니다.
그 죄수들은 팔다리가 모두 묶여 있고, 시선은 자신들 앞의 벽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들 뒤에는 타오르는 모닥불이 놓여 있는데, 그 앞에서 어떤 사람들이 인형과 모형들을 조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수들은 이 상황을 볼 수 없지요. 그들이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자신들 앞의 벽에 비춰지는 인형들의 그림자뿐입니다.
플라톤은 이런 상황을 마치 우리와 처지와 같다고 말합니다.
태어나면서 경험한 세계가 동굴 안이 전부라면, 우리는 이것이 진정한 실재의 세계라고 여기며 살아갈 것입니다.
다른 세계에 대해서는 경험을 할 수 없고, 오직 경험만이 참이라고 믿는 우리는 자신의 경험치를 넘어서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을 테니까요.
벽에 비춰진 인형과 사물만을 평생 보며 살아 온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것만이 참된 실재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입니다.
동굴의 세계는 자신과 세계에 대한 독선과 편견으로 말미암아 왜곡된 세계이며, 타인의 독선과 편견에 의해서도 왜곡된 세계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만을 믿고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아무 생각 없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태이지요.
어쩌면 그들에게는 이런 상태가 정상적인 조건일 뿐만 아니라, 아무도 그로부터 탈출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어떤 사람이 죄수의 상태에서 벗어난다고 가정해 봅시다.
결박에서 풀려나 뒤를 돌아본 동굴 안 죄수는 몹시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이제까지 실재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허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두려움에 새로운 세상 밖으로 나아가길 주저합니다.
그러나 결국 죄수는 용기와 호기심으로 세상 밖으로 나올 것입니다.
태양을 본 죄수, 그는 이 세상의 참된 모습을 보았습니다.
진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진리를 알게 된 사람은 오직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아름다움을 함께 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동굴 안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어려움은 남아 있습니다. 동굴 밖으로 나갈 때보다 상황이 더 나쁠 수도 있습니다.
밝은 곳에서 갑자기 어두운 곳으로 내려온 그는 한동안 아무것도 볼 수가 없습니다.
줄곧 동굴 안에 있던 사람들보다 현실에 눈이 더 어두워 더듬거리고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이 모습을 보며 죄수들은 그를 비웃고 조롱합니다.
동굴 밖으로 나갔다가 눈이 더 이상해져서는 함께 나갈 것을 권한다고 말입니다.
그중에 몇몇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일 테지만, 동굴 안에서 기득권을 누리던 특권 계급은 그를 동굴 사회에 혼란을 가져오는 불순분자로 여길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태양을 보고 온 죄수를 할 수만 있다면 죽이려고 들 것입니다.
플라톤은 스승의 죽음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진리의 빛을 본 자가 진리의 세계에 대해 사람들을 설득하지만, 결국 사람들이 그를 죽였다고 말입니다.
철학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플라톤의 가장 대표적인 저서로는 《국가》라고 번역된 《폴리테이아 politeia》를 들 수 있습니다.
플라톤의 최대 관심은 그 같은 정치적 타락을 벗어나 가장 바람직한 형태의 사회 공동체를 찾는 데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가장 올바른 정치형태인 ‘정치의 이데아’를 찾고자 한 것이지요. 플라톤은 그 같은 이상 국가, 즉 ‘유토피아’를 꿈꾸었습니다.
유토피아란 말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플라톤입니다.
그는 우선 국가가 최초에 어떻게 생겨났는지부터 탐구합니다.
사회가 점점 커짐에 따라 불화가 일어나고 때로는 다른 국가와 전쟁도 치르게 됩니다.
이 상황에서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지려면 어떤 질서가 필요할 것입니다.
플라톤은 그 질서가 ‘정의’라고 보았습니다.
정의로운 사회는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고, 서로에게 해를 입히지도 플라톤은 개인이 행복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이성의 명령에 따를 때이며, 국가의 행복도 통치자인 지혜로운 사람들의 말을 잘 따를 때 유지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플라톤의 이상 국가는 아테네 민주주의보다는 사실 스파르타의 정치체제에 더 가까웠습니다.
통치는, 다른 기술처럼 통치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의로운 국가는 국가의 이데아를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그들이 바로 철학자입니다.
플라톤은 통치자가 되는 철학자들에게 보통 사람이라면 실천하기 어려울 제한 목록을 제시합니다.
공동체 내에서 우수한 아이들을 선발하여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체육과 음악, 시 등 기초교육을 시킵니다.
다만, 음악과 시 교육은 감성에 빠지지 않고 용감성을 잃지 않도록 제한되어야 하며, 건강한 육체를 유지할 수 있도록 체육은 강화합니다.
이후에는 수학과 천문학, 화성학을 10년 동안 배우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걸러진 소수의 예비 통치자들을 대상으로 5년간 철학 교육을 행합니다.
그런 다음 이들은 15년간 국가 하위공무원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마침내 쉰 살이 되면, 이들 가운데 철학적 인식 중 최상에 속하는 ‘선의 이데아’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을 엄격한 시험을 거쳐 선출합니다.
국가를 통치할 철인 왕은 이렇게 선택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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