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이 세계는 과연 그림자일까
“모든 인생은 고통이다.”세상은 고통의 도가니다. 세상은 감옥이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그러한 고통의 필요성을 인식한 철학자이다.
쇼펜하우어를 스승으로 섬겼던 니체는 이에 맞서 고통을 버려야 할 것이 아닌 삶의 본질로 받아들인다.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는 신념으로 삶을 맞이하라고 명령한다.
삶의 전쟁터로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사관학교”에서 배워야 할 것은 바로 나를 죽이려 하는 것에 대항하는 훈련이다.
이런 점에서 니체 철학 자체가 바로 “삶의 사관학교”인 것이다.
“내 인간애는 끊임없는 자기 극복이다.”
고통은 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끌어안고 살아야 할 것이다.
모든 창조는 고통을 통해 생겨나니까.
그래서 니체는 자신의 좌우명으로 “상처에 의해 정신이 성장하고 새 힘이 솟는다”라는 구절을 선택했던 것이다.
상처! 그것은 고통의 다른 말이다.
니체는 “상처 내부에도 치유력이 있는 법”이라는 사실에 확신을 가졌다.
플라톤과 쇼펜하우어에 집중해 보자.
플라톤이 던진 첫 번째 질문은 “영원히 존재하지만 근원이 없는 것은 무엇일까?”였다.
그것은 분명 이념계이며 동시에 본질계를 의미하는 이데아임에 틀림없다.
이데아는 근원이 없다고 단언한 것이다. 현상계와의 아무런 관계없이 홀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영원한 존재임을 선언한다.
그것만이 진짜라는 것이다. 이데아만이 실존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인 “그리고 생성하고 소멸하면서도 / 결코 존재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는 현상계를 의미한다.
현상계는 생멸이 공존하는 곳이다.
어디선가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또 어디선가 출산의 상황에 손뼉을 치는 곳이다.
현상은 시간과 공간의 형식 속에서 영원히 변화하며 존재한다.
이 세상은 플라톤에게 오로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불과하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에 꿈과 같은 것이다.
플라톤의 눈에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꿈속을 헤매는 듯이 보였다.
본질을 보지 못하고 현상에 눈이 멀어 있다고 생각했다.
보는 눈을 가졌음에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눈뜬장님으로 말이다.
쇼펜하우어의 의문점은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해석이다. 정말 존재하지 않을까?
무슨 근거로 눈에 보이는 이 모든 장관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란 말인가?
인간이 자신의 내면적 존재에게 너무 치우친 나머지 외면적 존재를 무시해 버리는 어리석은 판단이 아닐까?
어느 한 쪽을 거부하고 다른 한쪽을 선택하는 이런 흑백논리 앞에서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철학을 위한 실마리를 찾아낸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라는 명제로부터 시작한다.
이것을 놓치면 바다 한가운데서 나침반 없이 표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표상을 무시하면 시작할 수도 없다.
이것이 바로 플라톤 철학과 차이점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표상을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진정한 인식은 그것에서 시작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
플라톤
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이론화하면서 체계적으로 설명한 대표적인 철학자로 칸트를 꼽을 수 있다.
그의 3대 비판서 중 첫 번째 대표저서 《순수이성비판》의 출판은 칸트, 피히테, 쉘링, 헤겔로 이어지는 독일 관념론의 시작을 알리는 전환점이 된다.
칸트의 철학은 신神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과거의 형이상학에 비판적 입장을 내세우며 계몽주의 철학의 의미와 가치를 주장한다.
계몽주의
의 출발은 무능無能을 인식하는 것에 있다. 무능은 죄다. 무능이 악惡이다.
플라톤이 무식無識을 죄로 보았다면, 칸트에 와서는 무능이 죄로 평가되는 것이다.
플라톤이 영원한 이념을 인식하는 것을 행복의 단초로 보았다면, 칸트는 미몽에서 깨어나 자기 자신의 두 발로 자신의 세계 속에서 당당하게 설 수 있는 그 능력으로 불행에서 벗어나 마침내 행복의 나라로 갈 수 있다고 선언한다.
칸트
는 일반화된 이런 상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시대가 바뀌었음을 인지했다.
믿음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용기가 필요함을 인식한 칸트는 “자페레 아우데”,
즉 “용기를 가져라”를 좌우명으로 삼게 된다.
이 말을 계몽주의의 좌우명이라고 단언했다. 바꿔 말하면, 자기 철학의 좌우명이 된다.
신에 대한 믿음이 없어도 생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의 판단 능력에 확고한 믿음을 가져 달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믿으라는 새로운 신앙의 등장을 선언한 셈이었다.
바로 이런 점에서 계몽주의 사상은 신에게서 인간에게로 방향을 틀어 놓는 철학인 셈이다.
르네상스
시기의 학자들은 앞선 세대를 중세라 칭하며 거리를 두었고, 또 “암흑기”라며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르네상스는 교회의 논리 속에서 인간의 가치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그 자체의 한계를 드러낸다.
말하자면 중세의 세계관 속에서 인간의 의미를 추구했고, 인간미를 찾으려 했다.
르네상스인들의 머릿속에는 온통 중세적인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
이것이 르네상스의 한계인 것이다.
계몽주의
가 태양으로 선택한 것은 이성이었다.
암흑이 신의 영역이었다면 이제는 이성의 시대가 펼쳐지는 것이다. 모든 것은 빛 속에서 확고한 평가를 받게 되었다.
세상은 밝아졌다. 변화와 함께 철학도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을 꾀했다.
계몽주의 철학은 변하는 시대에 맞물려 태동했다.
신학이 신 앞에서 죄와 신앙 고백을 요구했다면, 계몽주의 사상은 자기 자신의 판단능력에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용기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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