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지용’에 관한 일화는 사물의 이치와 사람이 사는 이치가 꼭 같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인간세〉에 나오는 ‘무용지용’의 일화에 따르면, 전설적인 장인인 장석匠石이 제나라로 가다가 곡원 땅에 이르렀을 때 토지신인 사당의 상수리나무를 보았다.
크기는 수천 마리 소를 가릴 만하고 둘레는 백 아름쯤 되었다.
높이는 산을 내려다볼 정도여서 땅에서 천 길이나 올라간 뒤에야 비로소 가지가 뻗어 있다.
배를 만들 경우 수십 척에 달할 정도였다.
나무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마치 저잣거리처럼 많이 몰려왔다.
장석은 이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대로 가던 길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제자가 실컷 그 나무를 본 뒤 황급히 달려와 물었다.
“제가 도끼를 잡고 선생을 따른 이래 이처럼 좋은 재목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선생은 본체만체하며 가던 길을 멈추지 않으니 이는 어찌된 것입니까?”
장석이 대답했다.
“되었다, 더 이상 말하지 말라. 그것은 쓸모없는 잡목일 뿐이다.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관이나 곽槨을 만들면 곧바로 썩고, 그릇을 만들면 이내 부서지고, 대문이나 방문을 만들면 나무 진액이 흘러나오고, 기둥을 만들면 좀이 슬 것이다.
그러니 이 나무는 재목이 될 수 없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던 까닭에 이처럼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장자가 이 일화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바로 ‘무용지용’이다.
《도덕경》 제36장에도 유사한 취지의 구절이 나온다.
“부드럽고 약한 것만이 오히려 단단하고 강한 것을 이길 수 있다(柔弱勝剛强).”
한고조 유방의 책사 장량張良은 젊었을 때 황석공이라는 전설적인 도인을 만나 비전祕傳의 병서인 《태공병법太公兵法》을 손에 넣게 되었다. 여기에 노자의 도덕경에서 따온 ‘유능제강, 약능제강’ 구절이 나온다.
장량의 일대기를 다룬 《사기》 〈유후열전〉에 장량이 황석공을 만나게 된 일화가 나온다.
이에 따르면 장량은 원래 부친과 조부를 비롯해 위로 5대에 걸쳐 한韓나라 재상을 지낸 명문 출신이다.
한나라가 망하자 장량은 전 재산을 기울여 진시황제를 척살할 자객을 구해 한나라의 원수를 갚고자 했다.
천하에 명을 내려 10일 동안 대대적인 수색을 펼쳤으나 허사였다. 장량은 이름을 바꾼 뒤 하비로 가서 몸을 숨겼다.
하루는 장량이 한가한 틈을 내어 하비 외곽을 흐르는 내 위에 걸쳐 있는 다리 위를 천천히 산책했다.
이때 한 노인이 거친 삼베옷을 걸치고 장량이 있는 곳으로 다가온 뒤 곧바로 신발을 다리 밑으로 떨어뜨렸다.
그러고는 장량을 돌아보며 이같이 말했다.
“얘야, 내려가서 내 신발을 가져오도록 해라!”
장량이 내심 화가 났으나 그가 노인인 까닭에 억지로 참고 다리 아래로 내려가 신발을 주워 왔다.
노인이 말했다.
“신발을 신겨라!”
장량은 기왕에 신을 주워 왔으므로 꾹 참고 꿇어앉아 신발을 신겨 주었다.
노인은 이내 웃으며 가버렸다.
장량이 크게 놀라 눈으로 노인이 가는 곳을 쳐다보았다.
이때 노인이 문득 1리쯤 가다가 다시 돌아와 말했다.
“얘야, 내가 보니 너는 가히 가르칠 만한 듯하다.
5일 뒤 새벽에 나와 여기서 다시 만나자.”
장량이 괴이하게 여겨 꿇어앉은 채 대답했다.
“그리하겠습니다.”
5일 뒤 새벽에 그곳으로 가보니 노인이 먼저 와 있었다. 노인이 화를 냈다.
“노인과 약속하고 늦게 오다니 이 어찌된 일인가?”
노인이 되돌아가면서 말했다.
“5일 뒤 더 일찍 만나도록 하자.”
닷새 뒤 닭이 우는 이른 새벽에 장량이 다시 그곳으로 갔다. 노인이 또 먼저 와 있었다.
그가 다시 화를 냈다.
“또 늦게 오다니 이 어찌된 일인가?”
노인이 다시 그곳을 떠나면서 말했다.
“5일 뒤 좀 더 일찍 나오도록 해라.”
다시 닷새 뒤 장량이 한밤중이 되기도 전에 그곳으로 갔다.
얼마 후 노인이 와서는 기뻐하며 말했다.
“응당 이같이 해야지.”
그러고는 책 한 권을 내주며 말했다.
“이 책을 읽으면 왕자王者의 스승이 될 수 있다. 아마 10년 뒤 그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13년 뒤에는 제수 북쪽에서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곡성산 아래에 있는 황석黃石이 바로 나일 것이다.”
노인은 이같이 말한 뒤 더 이상 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
이후 다시는 그를 볼 수가 없었다.
장량이 다음 날 아침에 책을 보니 서명書名이 《태공병법》이었다.
장량이 이를 기이하게 여겨 늘 익히며 소리 내어 읽었다.
거기에는 승리를 거머쥐는 방략이 무궁무진했다.
그 안에 바로 ‘유능제강, 약능제강’ 구절이 있었다.
장량이 유방을 도와 천하를 평정하게 된 비결이 바로 이런 이치를 통찰한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능제강, 약능제강’의 이치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사물의 기본 이치’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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