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철학사

고전에서 배운다 고사성어 6

cbc 2023. 5. 18. 02:24

<< 대기만성 >>

삼국시대를 마무리 짓고 천하를 통일한 서진 때의 사가 진수陳壽의 정사 《삼국지》 〈위지魏志〉에 ‘대기만성’과 깊은 인연이 있는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삼국시대 당시 위魏나라에 최염崔琰이라는 명장이 있었다. 

그의 사촌 동생 최림崔林은 외모가 시원치 않아서인지 출세를 못하고 일가친척들로부터 멸시를 당했다. 

그러나 최염만은 최림의 인물됨을 꿰뚫어 보고 이렇게 말했다. 

“큰 종鐘이나 세 발 솥인 정鼎은 그렇게 쉽사리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큰 인물도 대성大成하기 전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너도 그처럼 ‘대기만성’을 하는 형이니, 두고 보면 나중에 틀림없이 큰 인물이 될 것이다.” 

과연 그 말대로 최림은 장성한 뒤 천자를 보좌하는 삼공三公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스스로 뼈를 깎듯이 애쓰며 노력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맺기가 힘들다. 

정성과 노력이 부족하면 끝이 초라하게 마련이다. 

거대한 산은 오랜 세월을 걸쳐 토석土石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였기에 그토록 높아졌고, 드넓은 바다는 오랜 세월에 걸쳐 세상의 모든 세류細流를 받아들였기에 그토록 깊어진 것이다. 

사람도 이와 꼭 같다. 오랜 시간과 노력이 투여돼야만 천하가 필요로 하는 인물이 될 수 있다. 

 

《채근담菜根譚》에 이를 뒷받침하는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오래 엎드린 새는 반드시 높이 날고(伏久者, 飛必高), 먼저 핀 꽃은 홀로 일찍 시들기 마련이다(開先者, 謝獨早). 

이런 이치를 알면 발을 헛디딜 우려도 면하고, 조급한 마음도 없앨 수 있다.” 

오래 엎드린 새는 반드시 높이 난다는 뜻의 ‘복구비고伏久飛高’와 먼저 핀 꽃은 홀로 일찍 시든다는 뜻의 ‘개선사조開先謝早’ 성어가 여기서 나왔다. 

매나 독수리 같은 맹금은 먹이를 노릴 때 오랫동안 움츠린 모습을 보인다. 

충분히 힘을 모은 뒤 일시에 폭발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한번 날면 반드시 높이 나는 이유다. 

그게 바로 ‘복구비고’이다. 

 

먼저 핀 꽃은 빨리 지게 마련이다. 힘을 빨리 소진하기 때문이다. 

게 바로 ‘개선사조’이다. 이런 이치를 알면 일을 서두르다가 그르치는 일을 최대한 막을 수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에서 성공하기를 고대한다. 문제는 이를 너무 서두르는데 있다. 

 

우리말에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 매어 쓸까’라는 속담이 있다. 일에는 일정한 순서가 있고 때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급해도 순서를 밟아서 일을 추진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물에 가서 숭늉 찾는다.’는 우리말 속담도 같은 뜻이다. 

급할수록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허욕과 허세를 버리는 게 관건이다. 그렇지 못하면 스스로를 재촉하게 된다. 

‘찬물도 쉬어가며 마신다.’는 우리말 속담이 이에 대한 좋은 경구에 해당한다. 

공자가 《논어》에서 역설했듯이 아는 길도 물어갈 줄 아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 쾌도참마>>

중국에서는 ‘쾌도참마’를 쾌도참난마快刀斬亂麻로 표현키도 한다. 

일본과 한국에서는 ‘쾌도참마’ 대신 주로 ‘쾌도난마快刀乱麻’를 사용하나 이는 ‘쾌도참난마’를 잘못 축약한 것이다. ‘

베다’의 뜻인 참斬을 빼면 ‘잘 드는 칼과 어지러운 삼실’의 뜻만 남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쾌도참마’ 성어의 고사는 남북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쾌도참마’는 바로 북제를 건립한 고양이 보위를 잇게 될 당시의 일화에서 나온 성어이다. 

《북제서》 〈문선제기〉에 따르면 동위의 실력자 고환高歡은 여러 명의 자식을 두고 있었다. 

하루는 자식들의 재주를 시험해 보기 위해 한자리로 불러 모았다. 

이어 자식들에게 뒤얽힌 삼실 한 뭉치씩을 나눠주고 추려내 보도록 했다. 대다수 자식들이 한 올 한 올 뽑느라 진땀을 흘렸다. 

이때 차자인 고양高洋이 잘 드는 칼 한 자루를 들고 와서는 헝클어진 삼실을 단번에 싹둑 잘라버렸다.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는 부친 고환 앞으로 나아간 고양이 말했다. 

“어지러운 것은 반드시 베어야 합니다!”

여기서 ‘난자수참乱者须斩’ 성어가 나왔다. ‘쾌도참마’ 성어와 같은 뜻이다. 

‘북제’를 세운 문선제 고양은 이처럼 어렸을 때부터 용맹하고 과단성이 있었다. 문선제 고양은 즉위 이후 종일토록 가무를 즐긴 데다 매우 포학했다. 

은밀히 문선제에게 양준언을 비판하는 보고를 올린 자들 모두 죽임을 당한 게 그렇다. 

군신이 서로에 대해 일말의 의심도 갖지 않은 결과다. 

덕분에 안팎이 맑아졌고 백성들의 삶이 평안했다. 고양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양준언은 각종 법령을 개정하는 등 쇄신책을 강구해 국위를 크게 떨쳤다. 

학자들 내에서 중국의 역대 재상 가운데 제갈량에 버금하는 탁월한 재상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많은 사가들이 중국의 전 역사를 통틀어 시종 군주와 한 몸이 되어 나라를 안정되게 하고 국위를 크게 떨친 경우는 오직 양준언의 사례밖에 없다고 본 이유다.

 

현재 학계 일각에서는 문화대혁명 등으로 중국을 혼란에 빠뜨린 마오쩌둥을 충심으로 보필하며 덩샤오핑 부활의 디딤돌 역할을 해 G2 중국의 기틀을 놓은 저우언라이를 두고 ‘20세기 버전의 양준언’으로 거론키도 한다. 

21세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이처럼 많은 일화를 남긴 성어는 ‘쾌도참마’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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