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도가 우리와 함께 있음을 가르쳐주는 책, 《중용》은 유학의 사서 가운데 하나다.
주희는 사서를 읽을 때는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의 순서로 읽으라고 했다.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고 꼭 알맞은 것이 ‘중(中)’이고, 언제나 변함없이 일정하고 바른 것이 ‘용(庸)’이다.
그러므로 ‘중’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올바른 도이고, ‘용’이란 사람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원리다.
중용의 원리는 크게 보면 온 우주에 가득 차 있고, 작게 보면 아주 작은 물건에도 담겨 있다.
그것은 사람들의 실생활에 언제나 쓰이는 학문이다.
《중용》을 잘 읽어 음미하고 연구하면 무한한 이익을 안겨줄 것이다.
‘중’이란 ‘치우치지 않고 꼭 알맞은 것’이고, ‘용’이란 쉼 없이 중을 지켜나가는 것이라는 말이다.
중용에서 중은 산술적인 가운데를 의미하지 않는다.
중용의 중은 올바른 도다. 그것은 상황과 연관된다.
현명한 자는 지나치고 어리석은 자는 미치지 못한다.
사람이 음식을 먹어도 그 맛을 아는 자 드물다.”
우리는 중용의 도와 함께 살지만 중용을 지키지 못한다.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한다.
중용의 중은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것을 말한다.
중용은 군자와 소인을 나누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군자의 중용은 때에 맞게[시중(時中)] 행동하는 것이다.
여기서 ‘때’란 그때, 그 상황, 그 사람의 처지와 환경을 모두 말한다.
군자는 그 모든 것을 고려하여 알맞게 행동한다.
그러나 소인은 사정을 개의치 않고 제멋대로 행동한다.
실천의 힘
공자가 말했다. “천하의 국가를 편안하게 다스릴 수 있고 벼슬을 사양할 수 있으며 흰 칼날도 밟을 수 있지만 중용은 능히 할 수 없다.”
공자는 중용의 어려움을 여러 번 이야기한다.
군자의 도는 보통 사람에게서 시작되지만 그 끝에 이르면 천지에 드러난다.
중용을 행하려면 중용 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 상황을 관통하는 도를 깨치는 것은 성인이라도 어려운 일이다.
큰 것을 이야기하면 중용보다 큰 것이 없고 작은 것을 이야기하면 중용보다 작은 것이 없다.
광대한 천지에서부터 미세한 입자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같은 이치로 움직인다.
그래서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가까운 것에서 먼 것으로 중용을 실천해가자고 한다.
한 발을 내딛지 않고는 열 걸음을 갈 수 없다.
중용의 도도 마찬가지다.
작은 것에서부터 점차 넓혀나가면 중용을 행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행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나면서부터 알고, 어떤 이는 배워서 알고, 어떤 이는 노력해서 알게 되지만 안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어떤 이는 편하게 행하고 어떤 이는 이로움을 위해 행하며 어떤 이는 어쩔 수 없이 행하지만 행한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남이 한 번 해서 할 수 있는 것일지라도 자신은 백 번 하고, 남이 열 번 해서 할 수 있는 것일지라도 자신은 천 번 한다.
이 도를 행할 수 있다면 어리석다 할지라도 반드시 밝아질 것이고, 유약하다 할지라도 반드시 강해질 것이다.
도를 행하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다. 천재가 아니라도, 성인이 아닌 보통 사람일지라도 정성스럽게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
본
성은 하늘이 준 것이다
중용을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
오직 성(誠), 즉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하라고 한다.
성은 속임이 없는 것이다. 성은 진실되고 영원불변하기 때문에 하늘의 도가 될 수 있다.
성은 하늘의 도이고, 군자는 성을 깨닫고 체현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바로 하늘, 우주와 하나인 사람이다.
성에서 본성과 가르침이 나온다. 본성과 가르침은 어떤 관계인가? 《중용》은 말한다.
“하늘이 만물에 부여한 것을 본성이라 하고 본성에 따르는 것을 도라 하며 도를 닦는 것을 가르침이라고 한다.”
인간의 본성은 하늘이 준 것이고 그 본성을 따르는 것이 도다.
그리고 도를 닦는 것, 즉 우리의 본성을 따르도록 하는 것이 가르침이다.
도를 닦는 일은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는 본성을 찾는 것이다. 성은 중용과도 연결된다.
오직 천하의 지극한 성이 있어야 본성을 다할 수 있다. 본성을 다할 수 있다면 사람의 본성을 다할 수 있다.
사람의 본성을 다할 수 있으면 만물의 본성을 다할 수 있다.
천지의 만물이 생겨나 자라게 도울 수 있으면 천지와 함께 참여할 수 있다.
우리는 하늘의 도를 실천한다
중용은 행하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기에 중용을 행할 수 있다.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우리의 바른 본성을 회복하면 행할 수 있다.
주희의 말처럼 《논어》는 인간의 도리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을 정했다.
《중용》은 그 도리가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본성이라고 하여 ‘옛사람의 오묘한 곳’을 드러냈다.
인간의 본성은 하늘이 부여한 것이므로 하늘과 인간이 합하여 하나가 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이룰 수 있다.
이렇게 《중용》은 인간이 하늘과 하나 되는 새로운 경지를 제시했다.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본성을 깨달아 실천하면 중용의 덕을 획득할 수 있다.
중용의 덕은 인간 최고의 도덕적인 목표다. 그러한 목표에 도달한 사람이 곧 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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