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철학사

[그리스철학] 그리스철학이 일찍 발전하게된 배경

cbc 2023. 5. 31. 03:21

 

 

고대 그리스철학은 서양 인문학의 뿌리이자 서양인들의 정신적 고향입니다.

서양 인문학의 근원과 그들의 정신을 이해하려면 고대 그리스철학을 비켜갈 수 없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 황허처럼 고대 문명의 직접적인 발생지도 아니었던 그리스에서 최초의 철학이 뿌리를 내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고대 그리스철학이 처음 생겨나고 눈부신 발전을 이룬 데에는 다른 지역과는 다른 어떤 조건이 있었을 것입니다.

철학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 조건을 그리스의 자연적 환경, 정치적 환경, 그리고 그리스신화와 시인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영향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스의 자연이 시각의 문화를 만들다

 

먼저, 그리스의 자연환경이 철학에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요?

그리스는 지리적으로 긴 산맥들이 땅을 가르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작고 폐쇄적인 무수한 계곡과 고원들, 그리고 바다와 접해 있는 반도에는 수많은 만과 정박지가 만들어졌습니다.

변화가 많은 지형과 맑고 투명한 날씨는 그리스인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었는데 바로 ‘시각의 문화’입니다.

시각의 문화란 눈에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를 말합니다.

그리스인에게 아름다움이란 입체적인 형식과 균형 잡힌 선들, 그리고 조화로운 모습을 가진 것을 의미하지요.

그들이 조각과 건축에서 독보적이며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런 문화 때문입니다.

 

시각의 문화는 예술의 영역에서만 돋보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침에 동트기 직전 어둠이 세상을 감싸고 있을 때, 사물들은 불투명해 그 모습을 잘 볼 수 없습니다.

이윽고 밝은 태양이 떠오르면서 희미했던 사물들은 모습을 드러내어 명확한 자태를 보여 줍니다.

그리스인에게 ‘진리’란 이렇듯 어둠에 숨어 있던 희미함이 빛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리스인들은 감추어져 드러나지 않았거나 불분명한 것들을 밝혀내려는 기질이 강했습니다.

그 같은 성향이 궁금증을 해결해 내고야 마는 탐구 정신을 낳았고, 과학과 철학을 만들어 내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그리스인에게 바다는 모험과 새로운 삶의 터전이었고, 동시에 주변 민족들과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었습니다.

이로써 다른 문화, 다른 관습, 다른 종교와 지식을 알게 되었지만, 한편으로 다른 민족들과의 갈등도 생겨났습니다.

그리스인들이 전통적으로 지켜 왔던 질서가 다양한 문화의 도전을 받았기에,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철학과 과학이 등장했다는 것이지요.

 

도시국가의 개방적인 토론 문화

 

고대 그리스인이 철학이라는 학문을 발견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요인은 정치적인 자유였습니다.

기원전 12세기경, 오늘날 터키 연안에 위치한 트로이는 그리스 연합군의 침략을 받고 오랜 전쟁을 거치는 와중에 결국 함락됩니다.

이후에는 문명이 뒤떨어진 북방의 그리스 종족들이 그리스 반도로 대규모로 이주해 왔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기원전 8세기경 부족 간 결합에 의해 독자적인 주권을 가진 작은 국가들이 도처에 생겨났는데, 이것이 도시국가인 폴리스 polis입니다.

자유로운 시민들에 의해 건설된 조그만 도시국가 형태는 그리스 민족만의 특징이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도시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신전을 세웠습니다.

그곳을 ‘아크로폴리스’라고 하는데, 가장 뾰족한 곳에 세워진 폴리스라는 뜻입니다.

그 아래에는 ‘아고라’라 불리는 장터와 ‘프리타네이온’이라는 시청이 있고, 주변에는 극장과 체력을 단련할 수 있는 연무장이 있습니다.

대다수 시민들은 아고라에 모여 장도 보고 그날 있었던 이야기도 나누곤 했습니다.

여론이라는 게 이곳에서 생겨났지요. 간혹 어떤 도시국가에는 왕이 있기도 했지만, 도시국가의 주인은 언제나 시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아고라에 모여 정치를 논하고, 토론을 즐겼습니다.

 

우월적 권위를 지니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장터에서 만나 대화를 할 때는 서로 간의 어떤 공통적인 바탕 위에서만 가능할 것입니다.

사람은 말을 통해 생각을 하고 소통을 합니다.

말은 단순히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사유 그 자체인 것이지요.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능력이자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배된 것, 모든 인간이 가진 공통의 것, 즉 ‘이성’을 바탕으로 서로 자유롭게 소통하는 데에서 철학은 싹을 틔우게 됩니다.

 

철학의 시작, 신화와 서사시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연의 힘과 질서 앞에서 두려움과 경이감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힘에 인격성을 부여했습니다.

최고의 신 제우스, 불과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와 그의 아내가 된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그리스인에게 가장 사랑받았던 아폴론 등 모든 신들이 가지고 있는 힘은 자연의 힘을 상징합니다.

또한 이들 신들은 인간과 비슷한 삶의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이런 식으로 자연의 힘에 인격성을 부여함으로써 그리스인들은 자연이 주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안정적 삶을 꾀할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이야기를 만들고, 또 다른 이야기와 결합되어 새로운 신화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다양하고 풍부한 그리스 신화를 최초로 집대성한 사람은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였습니다.

 

호메로스는 기원전 770년경 이오니아 지방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썼다고 여겨지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트로이와 그리스 연합군 사이의 오랜 전쟁과 전쟁 후 고국으로 돌아오는 그리스 병사들의 이야기를 노래한 장편 서사시인데, 여기에 자신이 모은 여러 신화들을 새롭게 창조해서 담았습니다.

지금도 유럽에서는 성경과 함께 가장 많이 읽히는 책으로 꼽히고 있지요.

한편으로 그의 서사시는 그리스인들의 삶의 지혜, 문화, 법 등 모든 것들이 망라된 백과사전이기도 했습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서양의 문화 발전에 미친 영향은 엄청났습니다.

 

그 다음 단계에 도달한 사람은 헤시오도스입니다.

헤시오도스와 호메로스는 비슷한 시기에 살았지만, 그중 헤시오도스는 비교적 합리적 사고의 소유자였습니다.

그의 두 교훈시는 재미를 위해서가 아니라 계몽을 목적으로 집필되었는데, 이런 성격의 작품을 쓴 것은 그가 처음이었습니다.

《신통기》에서 그는 신들을 열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을 완전하고 질서 있는 체계 속에 편입시킵니다.

그가 노래한 다양한 신들은 경모의 대상이 되는 인격화된 신들이 아니라 우주 질서의 유기적인 한 부분입니다.

나아가 그는 이 세계를 총체적인 연관을 지닌, 질서 있고 조화로운 대상으로 그려 냅니다.

헤시오도스의 물음은 인류 정신사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고, 그리스철학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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