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상을 지내면서 명장으로 명성을 떨친 누사덕婁師德은 키가 8척으로 입이 컸고, 온후하고 관인寬仁한 성품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그는 다른 사람이 아무리 무례하게 대들지라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하루는 대주 자사에 임명된 동생이 부임 인사차 들르자 이같이 주의를 주었다.
“우리 형제가 모두 출세해 황제의 총애를 받는 건 좋으나 그만큼 남의 시샘도 갑절은 된다.
그 시샘을 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다고 생각하느냐?”
동생이 대답했다.
“비록 남이 내 얼굴에 침을 뱉더라도 결코 상관하지 않고 잠자코 닦습니다.
만사를 이런 식으로 사람을 응대하여, 결코 형님에겐 걱정을 끼치지 않습니다.”
누사덕이 우려하는 모습을 보이며 이같이 충고했다.
“내가 염려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어떤 사람이 너에게 침을 뱉는 것은 너에게 뭔가 화가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네가 그 자리에서 침을 닦으면 상대의 기분을 거스르게 되어 틀림없이 더욱더 화를 낼 것이다.
침 같은 것은 닦지 않아도 그냥 두면 자연히 말라 버린다.
그런 때는 웃으며 침을 받아 두는 게 제일이다.”
누사덕이 시종 측천무후의 총애를 입은 근본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상대방이 침을 뱉을 때 씻어내기는커녕 웃으면서 받아주는 ‘타면자간’의 놀라운 인내 행보가 관건이다.
주무왕이 은殷나라 주紂를 무찌르고 새 왕조인 주나라를 열었다.
이때 지금의 티베트족의 선조에 해당하는 여족旅族이 오獒라는 진기한 개를 선물로 보냈다.
‘오’는 크기가 4척 이상인 개를 말한다.
중국에서 한때 사자와 닮았다고 해서 값이 수억 원대에 달했던 티베트 산 사냥개인 짱아오가 바로 ‘오’의 선조에 해당한다.
그는 〈여오〉에서 이같이 간했다.
“아, 밝은 군주가 삼가 덕을 펴자 사방의 이적이 모두 달려와 신하가 되고자 합니다.
원근을 막론하고 고장의 산물을 바쳐 왔습니다.
무익한 일로 유익한 일을 해치지 않으면 공이 이뤄지고, 기이한 물건을 귀하게 여겨 늘 쓰는 물건을 천하게 여기지 않으면 백성은 곧 풍족해질 것입니다.
개나 말은 그 풍토에 맞지 않으면 기르지 말고, 진기한 새와 짐승을 나라에서 기르지 마십시오.
먼 곳의 물건을 보배로 여기지 않으면 먼 곳 사람이 이르고, 어진 이를 보배로 여기면 가까운 사람들이 편히 여길 것입니다. 아, 숙야夙夜로 부지런하지 않은 때가 없도록 하십시오.
사소한 일에 조심하지 않으면 마침내 큰 덕에 누를 끼치게 됩니다.
9인仞 높이의 산을 만들면서 마지막 단계에서 흙 한 삼태기를 더하지 못해 무너뜨리는 공휴일궤功虧一簣의 우를 범하지 마십시오.
실로 이런 자세를 견지하면 생민生民 모두 자신들이 사는 곳을 지킬 수 있고, 군주 또한 대대로 왕업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공휴일궤’ 성어가 나왔다.
이 성어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바둑에서 보면 마지막 한 수가 모자라 대마가 잡히는 경우도 있다.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의 왕자인 사자와 표범도 마지막 순간까지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여 먹이를 잡는다.
피식자被食者는 필사적으로 달아나야만 겨우 살 수 있다.
사자와 같은 포식자 또한 필사적이지 않으면 사냥을 못해 이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인생사도 마찬가지다.
해당 분야에서 성공을 기하고자 할 때 마지막 순간까지 고도의 집중력과 필사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남들에게 칭송을 받는 모든 성공 사례가 이와 같다. ‘
공휴일궤’의 이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안자춘추》에는 공자와 안영에 관한 일화가 모두 6번 나온다. 예외 없이 공자가 안영에게 누차 굴복당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안영을 추종하는 자들이 《안자춘추》를 편제했을 공산이 크다. 이 책에 ‘귤화위지’ 성어의 전거가 된 일화가 나온다.
초영왕은 무력으로 조카인 겹오郟敖를 몰아내고 보위를 찬탈한 자이다.
그는 재위기간 동안 이웃 나라를 차례로 정복해 초나라의 패권을 확립코자 했다.
기원전 531년에는 채蔡나라를 ‘멸국치현’의 희생양으로 삼았다.
이후 여세를 몰아 허許, 호胡, 심沈, 도道, 방房, 신申 등 6개 소국을 초나라 내지로 이동시켜 사실상 일개 현으로 편입시켰다.
역대 사서가 무도한 폭군으로 폄하했으나 그가 추진한 일련의 정책은 초나라의 패권 장악을 위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초영왕이 제나라의 사자로 온 안영에게 이처럼 무례한 농담을 마구 해댄 것은 제나라를 얕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안영이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이같이 맞받았다.
“저의 나라에선 사자를 보낼 때 상대국에 맞게 사자를 골라서 보내는 관례가 있습니다.
소국에는 작은 사람, 대국에는 큰 사람을 보내는 게 그렇습니다.
신은 사자들 가운데 가장 작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초나라로 오게 된 것입니다.”
안영의 뛰어난 대응에 기세가 꺾인 초영왕이 맞대응을 하지 못하고 화를 삭이고 있을 때 마침 포졸이 제나라 출신 죄수를 끌고 갔다. 초영왕이 포졸에게 물었다.
“그는 어디 출신인가?”
“제나라 사람입니다.”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가?”
“도둑질을 했습니다.”
초영왕이 안영에게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말하였다.
“제나라 사람은 도둑질을 잘하는구나!”
그러자 안영이 이같이 대꾸했다.
“제가 듣기로는 귤이 회남淮南에서 나면 귤이 되지만, 회북淮北에서 나면 탱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귤과 탱자는 모양만 같을 뿐 그 맛이 다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수토水土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백성들 가운데 제나라에서 생장한 자는 도둑질을 하지 않습니
그러나 초나라로 들어오면 도둑질을 하게 됩니다.
초나라의 수토가 백성들로 하여금 도둑질을 잘하게 만든 것입니다.”
19세기 말 영국 왕립지리학회의 최초 여성 멤버였던 비숍은 조선을 방문해 탐사한 뒤 《한국과 이웃 나라들》을 저술했다.
이 책에 따르면 비숍의 조선인에 대한 첫인상은 매우 안 좋았다.
거리가 지저분한데다 사람들이 온통 게으른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내심 가망이 없다고 느꼈다.
그러나 시베리아에 이주한 조선인들을 만나 그들이 근면하고 성실한 자세로 재산을 모으는 것을 보고는 생각을 완전히 바꿨다. 그녀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조선에 있는 백성들이 게으른 것은 양반과 관원들의 가렴주구苛斂誅求 때문이다.
이익이 안전하게 보호된다는 보장이 없기에 하루 세끼를 먹을 수 있을 정도로만 일을 하고 땅을 경작하는 것이다.
시베리아 정착민들 역시 조선에 그대로 있었으면 똑같이 게으른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구한말 당시의 풍토가 귤의 자질을 지닌 자를 탱자로 만들 정도로 부정부패에 찌들어 있었음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정부패가 만연한 곳에서는 결코 귤이 생장할 수 없다.
온통 탱자뿐이다. 사서의 기록을 보면 ‘귤화위지’ 성어가 때와 장소를 막론하고 그대로 적용되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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