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철학사

고전에서 배운다 고사성어 3

cbc 2023. 5. 17. 05:03

춘추시대 말기 위령공衛靈公으로부터 커다란 총애를 받은 미자하彌子瑕가 방자한 모습을 보였다. 

위나라 법에 따르면 군주의 수레를 몰래 타는 자는 발을 자르는 월형刖刑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다. 

미자하의 모친이 병이 들었을 때 어떤 사람이 밤에 몰래 와서 이를 알렸다. 

미자하가 위령공의 수레를 슬쩍 빌려 타고 나갔다. 

위령공이 이를 전해 듣고 오히려 그를 칭찬했다.

“효자로다. 모친을 위하느라 발이 잘리는 형벌까지 잊었구나!”

 

다른 날 미자하가 위령공과 함께 정원에서 노닐다가 복숭아를 따먹게 되었다. 

맛이 아주 달았다. 반쪽을 위령공에게 주자 위령공이 칭송했다.

“나를 사랑하는구나. 맛이 좋은 것을 알고는 과인을 잊지 않고 맛보게 하는구나!”

세월이 흘러 미자하의 용모가 쇠하고 총애가 식었다. 한번은 위령공에게 죄를 짓게 되었다. 

위령공이 대로한 표정으로 질타했다.

“이 자가 전에 과인의 수레를 몰래 타고 나간 일도 있고, 또 자신이 먹던 복숭아를 과인에게 먹인 일도 있다!”

결국 미자하는 죽임을 당했다. 이를 두고 한비자는 이런 사평史評을 덧붙여 놓았다.

 

“미자하의 행동에는 변함이 없었다. 

미자하의 행동이 전에는 칭찬받았다가 후에 책망을 받게 된 것은 군주의 애증이 변했기 때문이다. 

군주에게 총애를 받을 때는 지혜를 내는 것마다 군주의 뜻에 부합해 더욱 친밀해졌다. 

그러나 미움을 받게 되자 아무리 지혜를 짜내도 군주에게는 옳은 말로 들리지 않고, 오히려 질책을 받으며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군주에게 간언을 하거나 논의를 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자신이 과연 군주에게 총애를 받고 있는지, 아니면 미움을 받고 있는지 여부를 잘 살핀 뒤 유세해야만 한다!” 

 

미자하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군주의 심기를 거스르는 이른바 역린逆鱗은 기본적으로 군주의 변덕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서를 보면 군주의 변덕에 따른 ‘여도지죄’ 추궁 사례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를 무턱대고 탓할 수만도 없다. 군주도 사람인 까닭에 상황에 따라 입장이 수시로 바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군주가 총애하는 신하도 수시로 바뀔 수밖에 없다. 

 


전국시대 말기 초위왕楚威王은 크게 노력한 끝에 마침내 부국강병에 성공했다.

“이제 우리 초나라가 이처럼 강대해졌으니 과인은 당당한 패주霸主가 되고자 하오. 

시범적으로 한 제후국을 토벌해 과인의 위상을 드높일 생각이오. 

대신들에게 묻건대, 과연 지금 상황에서 어느 나라를 치는 게 가장 좋겠소?” 

한 대신이 이같이 대답했다. 

“신의 소견으로는 월나라가 가장 적합할 듯싶습니다. 

지금 월나라는 정사가 크게 어지러워 백성들의 생활이 궁핍하고, 군의 사기가 크게 떨어져 있습니다. 

이런 혼란을 틈타 치면 승리는 물론이고 도탄 속에 신음하는 월나라 백성들도 구해낼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것입니다.” 

당시 대부 두자杜子는 이 얘기를 듣고 월나라 토벌을 기필코 저지코자 했다. 

“신이 듣건대, 대왕이 월나라 토벌을 꾀한다고 했는데 이게 사실입니까?” 

초위왕이 대답했다.

“이번엔 내가 묻도록 하겠소. 그대가 보기엔 과인의 염원이 실현될 수 있을 것 같소?” 

한참 생각하던 두자가 대답은커녕 오히려 이같이 반문했다. 

“대왕은 이 싸움에 승산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까?” 

초위왕이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초나라는 막강한 무력과 넘쳐나는 곡식을 보유하고 있소. 

월나라 토벌이야 손을 뒤집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겠소?”

 

두자가 다시 물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대왕은 자신의 눈썹을 볼 수 있습니까?”

초위왕이 되물었다.

“그 누구도 자신의 눈썹을 볼 수는 없소. 그것이 월나라를 공격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오?” 

두자가 대답했다. 

“사람의 허물을 눈썹에 비유할 경우 사람들은 자신의 눈썹을 볼 수 없듯이 자신의 허물 역시 잘 알 수 없습니다. 

얼마 전 진秦과 진晉 두 나라와 벌인 싸움에서 초나라가 패해 몇 백 리에 걸친 영토를 버리고 달아나지 않았습니까? 

이런 군대가 과연 강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또한 초나라의 장희莊喜라는 간신이 도적질을 일삼아 백성들에게 고통을 줄 때 법을 다스리는 벼슬아치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이 일을 모르고 있던 것입니까? 

초나라는 군사와 정사 면에서 결코 월나라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대왕의 잘못된 판단은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눈썹을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 말을 들은 초위왕이 비로소 정벌 계획을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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