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 때 풍익태수를 지낸 손초孫楚는 벼슬길에 나가기 전에 도인처럼 살고자 했다. 당시 사대부 사이에는 속세를 경시하며 도인처럼 사는 것을 중시하는 이른바 청담淸談 사상이 유행했다.
하루는 친구인 왕제王濟에게 자신의 속셈을 털어놓았다. 이때 돌을 베개 삼아 눕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을 한다는 뜻의 침석수류枕石漱流를 잘못하여 반대로 얘기했다. 돌로 양치질을 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는다는 뜻의 수석침류漱石枕流로 표현한 게 그렇다.
‘수석침류’ 얘기를 들은 왕제가 큰소리로 껄껄 웃었다. 이내 그가 실언임을 지적하자 자존심이 강한 손초가 이같이 강변했다.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는 ‘침류枕流’는 요임금 때의 은자인 허유許由처럼 쓸데없는 말을 들었을 때 귀를 씻고자 하는 취지이고, 돌로 양치질을 하는 ‘수석漱石’은 이를 잘 닦고자 하는 취지라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나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은 늘 실수 내지 실언을 할 수 있는 만큼 곧바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면 될 일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문재文才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손초는 결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억지 해석을 시도한 것이다. 그의 실수로 인해 만들어진 ‘수석침류’ 성어는 남에게 지기 싫어하여 사실이 아닌 것을 억지로 고집부리는 궤변의 뜻으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수석침류’와 비슷한 고사성어로는 ‘견강부회牽强附會’가 있다.
가당치도 않는 말을 끌어들여 자신의 주장이나 조건에 맞도록 합리화하는 것을 뜻한다.
주목할 것은 이와 비슷한 취지로 만들어진 ‘아전인수我田引水’ 성어이다.
일본어로는 ‘가덴인스이がでんいんすい’로 읽는다. 중국에서도 ‘워텐인수이’로 읽으면서 이 성어를 널리 사용하고 있다.
이 성어가 수출국인 일본보다 수입국인 한국과 중국에 더 널리 쓰이고 있는 셈이다.
‘문화 수출’의 성공사례에 해당한다.
이와 정반대로 ‘침류수석’은 수출국인 중국보다는 수입국인 일본에서 널리 사용되는 경우에 속한다.
일본어에서 예상했던 사람이 예상된 행동을 할 경우 우리말의 ‘역시나!’ 의미를 지닌 부사어로 이 성어를 널리 사용하고 있는 점이다.
일본어로 ‘사스가さすが’로 읽으면서 한자로 ‘침류수석枕流漱石’의 약자인 ‘유석流石’을 사용하는 게 그렇다.
정탐한다는 뜻의 ‘정遉’ 자를 사용해 ‘사스가’로 읽기도 한다.
대다수 일본인들은 그 유래를 자세히 모르는 까닭에 ‘유석流石’이라고 쓰고는 왜 ‘사스가’로 읽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에 ‘침류수석’ 성어가 이토록 큰 영향을 미친 데에는 이 성어가 부정적인 의미 이외에도 손초가 보여주었듯이 일종의 ‘임기응변’처럼 긍정적인 의미로도 사용된 사실과 무관치 않다.
실제로 일본어 ‘사스가!’에는 “역시 그답다!”라는 긍정적인 의미도 담고 있다.
중국에서 ‘수석침류’ 성어가 은거생활隐居生活을 뜻하는 성어로만 사용되는 것과 대비된다.
우리말의 ‘역시亦是!’도 일본어의 ‘사스가’와 마찬가지로 경탄의 뜻을 포함한 매우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다만 일본은 ‘침류수석’ 성어에서 유래한 ‘유석流石’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사스가!’라고 훈독하는데 반해 우리는 ‘역시!’라는 한자를 사용하며 글자 그대로 발음하는 점만이 다를 뿐이다.
〈원앙조조열전袁盎晁错列傳〉은 한나라 초기 앙숙으로 지내다 모두 죽음을 당한 원앙袁盎과 조조晁錯에 관한 전기이다.
원앙은 강직한 성품 탓에 지나친 간언으로 죽음을 자초했다.
하루는 한문제가 외출할 때 조담이 한문제를 시종키 위해 수레에 함께 탔다.
이때 원앙이 수레 앞으로 나아가 엎드린 채로 간했다.
“신이 듣건대 천자의 수레를 함께 탈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천하의 호걸과 영웅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한나라에 인재가 부족하다고는 하나 폐하가 어찌 환관과 함께 수레를 타는 것입니까?”
한문제가 웃으며 조담을 내리게 했다. 조담이 울면서 수레에서 내렸다.
한번은 한문제가 파릉에서 서쪽으로 가파른 고갯길을 말을 내달려 내려가려고 했다.
원앙이 타고 있던 말을 황제의 수레 옆에 대고는 말고삐를 당겼다. 한문제가 물었다.
“장군은 겁이 나서 그러는 것이오?”
원앙이 대답했다.
“신이 들으니 ‘1천 금을 가진 부잣집 아들은 앉을지라도 마루 끝에 앉지 않는 좌불수당坐不垂堂을 하고, 1백 금을 가진 부잣집 아들은 누각의 난간에 기대지 않는 불의형不騎衡을 한다’고 했습니다.
현명한 군주는 위험을 무릅쓰며 행운을 바라는 승위요행乘危徼幸을 하지 않는 법입니다.
지금 폐하는 6필의 말이 끄는 수레를 몰아 가파른 산비탈을 달려 내려가고자 합니다.
만일 말이 놀라 수레가 부서지기라도 하면 폐하는 몸을 가벼이 여긴 것으로 치부할지라도 종묘와 태후는 무슨 낯으로 대할 것입니까?”
이를 듣고 한문제는 결국 그만두었다.
한문제가 상림원으로 나들이하러 갔을 때 두황후竇皇后와 신부인愼夫人도 함께 따라갔다.
두 여인이 늘 같은 자리에 앉았다.
상림원을 관장하는 낭서장이 자리를 같은 위치에 마련하자 원앙이 신부인의 자리를 뒤로 당겨 물렸다.
신부인이 화가 나서 앉으려 하지 않자 한문제도 노해 이내 궁중으로 돌아가 버렸다.
원앙이 곧 궁중으로 들어가 한문제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신이 듣건대 존비에 질서가 잡히면 상하가 화목하다고 했습니다.
지금 폐하가 황후를 세운 이상 신부인은 첩에 불과합니다.
처첩이 어찌 같은 자리에 앉을 수 있습니까? 이는 존비의 분별을 잃은 것입니다.
폐하가 신부인을 사랑하면 후하게 상을 내리십시오.
폐하가 방금 하신 일은 바로 신부인에게 도리어 화가 되는 일입니다.
폐하 홀로 여태후 때 빚어진 ‘인체人彘’ 사건을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요?”
한문제가 크게 기뻐하며 신부인을 불러 원앙의 말을 들려주었다.
신부인이 원앙에게 황금 50근을 내렸다.
원앙의 고사에서 나온 ‘좌불수당’ 성어는 유사시에 대비한 철저한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일면 너무 지나친 보신책保身策이 아닐까 우려할 수도 있으나 매사에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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