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다
모든 인생은 고통과 고뇌로 이루어져 있다는 인식이 쇼펜하우어의 세계관이다.
이토록 힘든 세상을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통으로 가득 찬 인생을 견디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형이상학적 의지설 혹은 의지의 형이상학. 이것이 일반적으로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칭하는 말들이다.
그래서 그는 “의지의 형이상학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인간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지만, 원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는 없다.”
고대 로마 철학자 세네카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원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이다. 본질을 거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되고자 원하는 것이 되고 그가 원하는 것은 그의 실존에 앞선다.
하지만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철학은 바로 이 불가능해 보이는 본질로서의 원하는 마음을 거부하는 것이다.
즉 ‘원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쇼펜하우어의 굳은 믿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든 삶에 쫓기는 나머지 제대로 사려 분별을 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사는 대로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들은 베일에 싸인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갈 뿐이다. 하지만 사랑과 예술은 이런 삶을 거부한다.
그것들은 생각대로 살도록 노력하게 한다. 사랑과 예술은 생산된 자가 아니라 생산하는 자로 살고자 한다.
자기 인생의 진정한 생산자가 되고자 하는 것이 염세주의 철학이다.
자기 인생에 진정한 구원의 손길을 뻗는 것이 이 철학의 참된 의도이다.
예술 혹은 미적 체험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입장은 분명하다.
모든 사랑은 동정이다. 순수한 사랑은 연민이다.
자기를 제로 상태로 만드는 대신 대상을 100퍼센트로 자기 안에 채우는 일만이 진정한 사랑이다.
쇼펜하우어에게도 정언명법이 있다.
아무도 해치지 말고, 모두를 도와주어라, 네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탈을 향한 무無 속으로
어떻게 하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을까?
인류는 판도라가 넘겨준 희망으로 근근이 살아간다.
하지만 이 고통스러운 삶에 얽매이게 하는 것 또한 희망이라는 사실에서 그것은 제우스가 생각했던 대로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헛된 희망은 실망을 잉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적 철학에 어떤 거리낌도 없이 손길을 뻗는다.
차라리 모든 상황 속에서 나쁜 가능성들을 떠올려 보라고 말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몇 가지 유용한 대책을 찾게 되고, 일부 부정적 생각에서 벗어나는 기쁨을 만끽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통은 쇼펜하우어에게 있어서 중요한 열쇠로 작용한다.
고통을 회피한다거나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고통에 맞설 때 쓸데없는 희망을 제거할 수 있다.
고통은 삶의 현상 위에 드리운 베일을 벗겨 내고 본질을 바라보게 한다.
고통이 폭풍을 일으키는 먹구름이라면, 그 먹구름이 걷히고 난 직후에 푸른 하늘이 가장 선명하게 나타난다는 원리와 같다. 고통은 한마디로 인식의 전제가 된다.
기나 긴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지 않고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자는 하나도 없다.
지혜로운 자의 생애는 세상으로부터 방향을 바꾸는 훈련으로 지속하는 고행의 길을 의미한다.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면 인식만이 남는다. 주체와 객체 간의 경계는 사라진다.
현상의 원리로 작용하던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곳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진정하고 본질적인 자기 자신으로 회귀하게 된다.
은하수까지 언급하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마지막 문장에서 그동안 억눌렸던 모든 욕망들을 제거하게 되고, 마치 폭죽이 허공 속에서 화려하게 터지는 듯한 쾌감을 맛보게 된다.
세상이 힘들다는 것, 인생이 눈물로만 채워져 있다는 것, 가슴이 아파 견딜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에게 염세주의 철학은 위대한 위로의 해결책으로 다가온다.
그 철학은 위기의 순간에 더욱 큰 효과를 발휘한다.
염세주의 철학은 모든 것을 부정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모든 것을 얻는 비결을 알려준다.
삶의 무게를 극복하면, 마치 육중한 돌이 별이 되어 은하수로 충만한 우주 공간의 한 일원이 되는 듯한 행복감을 얻게 된다. 쇼펜하우어의 목소리는 간절할 때 포근한 위로의 소리로 들릴 것이다.
'철학 > 철학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쇼펜하우어] 우리가 보는 이 세계는 과연 그림자일까 (0) | 2023.05.20 |
---|---|
[쇼펜하우어]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세계를 가진다 (1) | 2023.05.20 |
[쇼펜하우어] 부정의 힘 (1) | 2023.05.20 |
[쇼펜하우어] 고통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 사람들 (0) | 2023.05.19 |
[쇼펜하우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오직 우리 자신의 의지뿐 (1) | 2023.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