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기억prospective memory은 나중에 해야 할 일에 대한 기억이다.
미래기억은 정신적인 시간여행 같다.
미래의 내가 하려는 일을 미리 정해두기 때문이다.
뇌가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인 동시에 미래의 어떤 시간, 어떤 장소에서 떠올려야 하는 기억이다.
그리고 우리가 잘 잊어버리는 기억이기도 하다.
사실 미래기억은 신경회로가 제대로 뒷받침해주지도 않고 너무 잘 잊어버리기 때문에 기억이 아니라 망각의 영역에 속하는 것 같다.
미래기억을 잊지 않고 떠올리기 위해서는 미래에 행동으로 옮길 의도나 취할 행동을 지금 부호화해서 기억에 넣어두어야 한다.
부호화까지는 대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대학생인 딸을 위해 집에 오는 비행기표를 오늘 취침 전에 예약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해보자.
이제 나는 뇌에게 비행기표를 예약해야 한다는 사실을 나중에 기억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제 기억이 부호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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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서 멀어지면
기억에서도 멀어진다
온갖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대개 두 번째 단계다.
주어진 임무를 기억해야 한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 뇌는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데 취약하다.
나이 들어서가 아니다. 나이가 적든 많든 똑같다.
딸의 비행기표 예약은 취침 전에 이를 닦는 것처럼 강하게 각인된, 취침 전의 습관적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자기 전에 딸의 비행기표 예약하기’라는 기억을 촉발할 만한 구체적인 단서를 적어도 하나는 만들어놓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나는 예약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미래기억이 떠오르게 하려면 외부 단서가 있어야 한다.
시간을 기반으로 단서를 만들 수 있다.
즉 정해진 시간이 되거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어떤 것을 하도록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2시 50분이 되면 학교에 아이 데리러 가기’로 저장할 수 있다.
아니면 사건에 기반한 단서도 가능하다. 어
떤 일이 일어나면, 그것이 다른 일을 하도록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단서가 된다.
‘다이앤을 보면 나 대신 아이를 데리러 가줄 수 있는지 물어보기’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단서가 너무 사소해서 또는 마땅히 알아봐야 할 단서를 알아보지 못해서 이런 종류의 기억을 쉽게 잊곤 한다.
하려던 일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것도 자주.
우리는 치약을 사거나, 엄마에게 전화를 하거나, 반납기한이 지난 책을 반납하는 것과 같은 일들을 잊어버린다.
마케팅 회사들은 늘 우리의 취약한 미래기억을 먹이로 삼는다.
우리는 사용하지 않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중에 해지하거나 취소할 생각에 30일 무료 체험을 조건으로 온라인 운동 프로그램에 가입하고, 명상 앱을 다운로드하고, 잡지를 구독한다.
그러고 나서 운동은 하기가 싫고, 명상은 영 익숙해지지 않으며, 잡지는 처음 하루이틀 읽은 게 다인데도 어느새 연회비 99달러가 결제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잊어버리고 해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7년 어느 연구팀이 35세에서 80세의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미래기억과 노화에 관한 실험을 했다.
의외로 45세의 참가자들이 가장 높은 성적을 보여 75퍼센트가 요청받은 일을 기억했다
하지만 45세를 기점으로 연령이 높아질수록 성적은 꾸준히 하락했다.
연구자들이 추가로 단서를 제공했다면 어땠을까?
“더 해야 할 일은 없나요?”라고 묻고 윙크를 한다면.
모든 연령대에서 이런 행위가 기억을 더욱 촉발했지만, 어떤 연령집단도 100퍼센트를 달성하지는 못했다.
기억해야 할 일이 엄청나게 중요하다면 미래기억을 더 신뢰해도 되지 않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어마어마한 고가의 첼로를 깜박하고 택시 트렁크에서 꺼내지 않거나 30센티미터에 육박하는 수술 도구를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의 복강에서 꺼내지 않는 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빵 사는 것을 잊거나 쓰레기 버리는 것을 깜빡하는 일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결과의 심각성과는 별도로 기억해야 한다는 걸 기억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 사례들은 다르지 않다.
하나 이상의 단서가 제때,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리고 주어진 단서를 포착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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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기억을 위한
단서 남기기
미래기억은 나이와 직업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어려운 과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처럼 누구나 저지르는 부주의 때문에 부당하게 비난하거나 비난받는다.
예쁘게 포장해서 바로 가지고 나갈 수 있게 부엌 테이블에 올려둔 선물을 잊어버리고 생일 파티에 빈손으로 도착하는 것은 덤벙대는 성격 때문이 아니라
제대로 된 단서가 없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하고, 미래기억에만 전적으로 의존한다면 실수의 가능성만 높아진다.
그래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보완 조치가 필요하다.
해야 할 일을 적어둔다.
미래기억을 도울 외부의 보조수단을 만들 수 있다.
지금 계획하고 있는 일을 나중에 기억해줄 거라고 자신의 뇌를 믿지 마라.
아마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적자.
목록을 만들었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목록을 확인해야 한다.
인간이기에 미덥지 않은 미래기억만 믿고 있다가는 수술 도구를 환자의 몸에서 꺼내지 않고 그대로 봉합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의사들은 해결책의 일환으로 체크리스트를 사용한다.
체크리스트를 꼼꼼히 살핀다면 수술에 사용된 도구의 행방을 하나하나 파악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착륙 전에 반드시 비행기 바퀴를 내려야 하는 비행기 조종사들도 빈약한 미래기억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다행히 그들도 체크리스트를 활용한다.
달력에 메모한다.
미래기억을 일정 기간 유지해야 한다는 점도 일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무엇이든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모두 달력에 적어두는 습관을 기르자.
이와 함께 하루에도 여러 번 달력을 확인하는 습관을 가져도 좋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능숙하다면 알람이나 알림 메시지를 설정해놓고 달력이나 일정표를 확인하는 방법도 있다.
계획은 구체적으로 세운다.
어떤 운동을 하고 싶은지, 운동을 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언제 운동을 할지 등과 연관된 구체적인 단서가 필요하다.
현관문 옆에 요가 매트를 갖다 놓는다.
눈에 보이는 단서가 생겼다. “정오에 요가”라고 달력에 적어놓고 11시 45분에 알람이 울리도록 설정해놓는다.
밤에 자기 전에 먹어야 할 약이 있다면 약통을 캐비닛 안에 안 보이게 숨겨둘 게 아니라 칫솔 옆에 잘 보이게 두어야 한다.
평소와 다른 일과에 주의한다.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 일부를 미래기억의 단서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취침 준비를 하다가 이를 닦아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그 예다.
하지만 매일 반복하던 일과에서 벗어나거나 늘 하던 일을 일시적으로 못 하게 되면, 지금껏 의지해오던 단서가 옮겨지거나 사라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가령 아침 일찍 약속이 있어서 아침 식사를 거른다면 약을 먹는 것도 잊어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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