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뇌과학

[뇌의 기억] 기억하기- 맥락찾기

cbc 2023. 6. 13. 19:22

 

뭔가를 기억하느냐 마느냐는 여러 가지 요소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기억의 생성을 위해서는 관심과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미 충분히 알았을 것이다.

지금 몇 살이건, 기억력 향상을 위해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주의집중이다.

주의결핍은 기억을 약화시킨다. 예외는 없다. 되뇌기, 자가 테스트, 시각과 공간 이미지, 기억술 등을 활용하거나 정보에 의외성, 감정, 의미를 부여할 때 기억은 향상된다. 이

밖에 기억을 생성하거나 불러오는 데 도움 혹은 방해가 되는 요소는 어떤 것이 있을까.

종종 우리의 기억력은 맥락에 의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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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하려고 여기에 왔더라?

이름이 생각나지 않고, 열쇠와 전화기를 둔 곳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불평에 이어 가장 흔한 경우다.

다들 방에 들어갔다가 멍해진 머리를 긁으며 고개를 갸웃거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내가 왜 여기 있지?’

왜 이런 일이 생길까? 내 경우, ‘부엌에 가서 안경 가져와야지’라고 생각한 지 말 그대로 단 몇 초 만에 내 몸은 부엌에 도착했다.

어떻게 이 생각, 이 기억이 그 짧은 시간 안에 내 머리에서 사라질 수 있을까? 하려고 했던 일에 대한 기억은 왜 부엌에서는 떠오르지 않다가 잠시 후 다시 침실에 가서야 떠올랐을까?

왜 부엌에서는 아무리 애써도 성과가 없었는데 침실에 가서는 별다른 노력도 없이 원하던 기억이 바로 떠올랐을까?

그 답은 맥락이다. 기억을 떠올릴 때의 맥락이 기억이 생성될 때의 주변 맥락과 일치할 때 우리는 기억을 훨씬 더 쉽고 빠르게 완전한 형태로 불러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하려는 일에 대한) 미래기억,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일화기억, (지식정보에 대한) 의미기억, (동작을 취하는 방법에 대한) 근육기억 모두에서 나타난다.

 

 

학습과 회상이 같은 조건하에서 이루어질 때 우리는 학습한 것을 더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다.

맥락 의존적 혹은 상태 의존적 기억에 관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구사례는 스코틀랜드의 심해 잠수부들을 대상으로 해저와 지상에서 실시한 실험이다.

잠수부 절반은 서로 연관이 없는 단어들을 해저 6미터 깊이에서 암기했고, 나머지 절반은 같은 단어를 해변, 즉 지상에서 외웠다. 이후 모든 잠수부에게 외운 단어들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게 했는데 이때 해저 또는 지상으로 나누어 단어를 회상하게 했다. 즉 잠수부들을 다음과 같이 네 그룹으로 나눴다.

 

해저에서 학습, 해저에서 회상
해저에서 학습, 지상에서 회상
지상에서 학습, 지상에서 회상
지상에서 학습, 해저에서 회상

 

결과는 어땠을까? 잠수부들은 시험 환경이 학습 환경과 같을 때 단어를 훨씬 더 잘 기억했다.

해저에서 단어를 외운 잠수부들은 해변에서보다 해저에서 더 많은 단어를 기억했다.

마찬가지로 해변에서 단어를 외운 잠수부들은 해저에서보다 해변에서 더 많은 단어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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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떠올릴 때의 맥락을 정보를 학습할 때의 조건과 일치시키면 기억을 회상하는 능력이 향상된다.

두 환경의 조건이 일치하지 않으면 회상에 방해를 받는다.

 

어릴 때 다니던 초등학교, 그 시절에 살던 집이나 동네에 갔다가 갑자기 그 시절의 생생한 기억이 아주 작은 부분까지 분명하게 마구 떠올랐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가령 버몬트주 농가에서 자랐지만 지금은 맨해튼 고층 건물 30층에서 근무하는 55세의 기업 임원이라고 해보자.

갑자기 열 살 때의 기억을 말해보라고 하면 별로 할 얘기가 없을 것이다.

맥락이 일치하지 않으므로 기억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당장 북쪽으로 차를 몰아 고향 땅을 밟으면 아마 할 얘기가 아주 많아질 것이다.

말뚝을 박아 세운 울타리, 수양버들, 표지판, 데일리 아주머니댁, 빨간 지붕을 얹은 축사 등 고향의 구체적인 맥락이 단서가 되어, 지난 30년, 40년, 혹은 50년간 잊고 있던 기억을 불러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런 기억들은 맥락 의존적이다.

하지만 맥락은 어떤 기억을 생성하거나 회상할 때 우리가 있던 장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함께 있었던 사람, 하루 중의 시간대, 계절, 날씨 등도 맥락에 포함될 수 있다.

또 맥락이 반드시 외적 환경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감정 혹은 생리학적 상태 같은 내면적 조건도 맥락이 될 수 있다.

 

지금의 기분과 일치하는 기억은 훨씬 불러내기가 쉽다.

기분이 좋을 때는 좋은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고 우울할 때는 비참했던 시기의 기억을 떠올리기 쉽다.

배우자에게 화가 날 때면 상대에 대한 온갖 나쁜 기억이 다 떠오를지 모른다.

그런 기억은 언제든 떠올릴 수 있고 한번 펼치면 끝도 없다.

반면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그 사람에 대해 뭐든 좋은 것만 떠오른다.

 

시험 공부를 하거나 발표 준비를 할 때 배고프고, 덥고,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쌓이고, 목이 말랐는가?

처음 정보를 학습할 때와 같은 상태에 놓일 때 공부하고 준비한 정보가 더 잘 떠오른다.

마찬가지로, 카페인을 섭취한 상태에서 뭔가를 외웠다면 역시 카페인을 섭취한 상태에서 외운 것들이 최고로 잘 떠오른다.

 

왜 그럴까. 지금 보고 있는 숫자만 기억으로 강화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숫자를 외우는 동안 경험하는 것은 모두 잠재적 기억으로 한데 묶인다. 외

적·내적 맥락 모두 기억의 일부가 되고 그중 어떤 부분이건 활성화되면 나머지 부분들에 대한 기억도 촉발된다.

 

언어도 맥락이 될 수 있다. 할머니가 열두 살에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오셨다고 하자.

이후 할머니는 영어를 사용했다.

할머니에게 어린 시절 추억을 들려달라고 하면 할머니는 아마 이탈리아어로  옛이야기를 들려줄지 모른다.

 

혹시 다음번에 어떤 방에 들어갔는데 왜 그 방에 들어갔는지 도저히 생각나지 않아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게 되더라도 당황할 필요는 없다.

이 멍한 상태는 일생일대의 위기도 알츠하이머병을 의심해야 하는 상황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냥 그 자리에 서서 떠오르지 않는 답을 억지로 쥐어짜내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그렇게 해서는 뇌를 움직일 수 없다.

그냥 그 방에 들어가기 전에 있던 곳, 이 방에 와서 ○○을 가져와야겠다고 처음 마음먹은 그곳으로 돌아가 보자.

정말로 돌아가도 좋고 마음속에 그려보기만 해도 좋다.

이전 맥락으로 돌아가면 고맙게도 거기에 답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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