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부터 그는 유럽의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를 포함한 폴란드의 여러 강제수용소로 수송하는 일을 맡았다.
이것은 아돌프 히틀러의 ‘최종 해결Final Solution’, 즉 나치 독일군이 점령한 지역에 살고 있는 모든 유대인을 죽이려는 계획의 일환이었다.
유대 인종이라는 이유만으로 수백만 명을 살해하겠다는 히틀러의 결정에 따라 나치 독일군은 유대인을 도시 밖의 대량 살상이 가능한 곳으로 이동시킬 필요가 있었다.
기존의 강제수용소는 하루에 수백 명을 독가스로 질식시키고 화장시키는 살상의 온상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수용소는 대부분 폴란드에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유대인들을 사지로 수송할 철도망을 조직해야 했다.
나치 친위대 중령 아돌프 아이히만은 근면한 관리자였다.
아이히만은 이 계획적 말살 정책에 책임이 없었다.
그것은 그의 생각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정책을 가능하게 만든 철도망을 조직하는 데 깊이 관여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그는 연합군으로부터 가까스로 탈출했고, 결국 아르헨티나에 도착해 수년간 신분을 숨긴 채 살았다.
그러나 1960년 이스라엘의 비밀 정보기관인 모사드Mossad의 조직원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그의 행적을 추적해서 붙잡았다.
그들은 아이히만을 법정에 세우기 위해 이스라엘로 압송했다.
아이히만은 사악한 짐승 같은 사람, 이를테면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사디스트였을까?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대다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홀로코스트에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겠는가?
미국으로 망명한 독일계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1906~ 1975)는 아이히만의 재판을 취재했다.
그녀는 나치 독일이라는 전체주의 국가, 즉 스스로 생각할 자유가 거의 없던 사회가 낳은 산물을 대면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고,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들을 할 수 있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아이히만은 아렌트가 만난 첫 번째 나치가 아니었다.
그녀는 나치를 피해 독일을 떠나 프랑스로 갔고 결국 미국 시민이 된 처지였다.
마르부르크 대학 시절, 그녀를 가르친 교수는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였다.
아렌트는 불과 열여덟 살이었고 하이데거는 유부남이었지만 두 사람은 잠시 연인 관계를 맺었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Being and Time』(1926)을 집필하느라 바빴다.
이후 하이데거는 나치당의 열렬한 당원이 되어 반유대 정책을 지지했다.
심지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했던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의 이름을 『존재와 시간』의 헌사에서 삭제했다.
이제 아렌트는 예루살렘에서 전혀 다른 유형의 나치를 만나게 되었다.
거기에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결정한 다소 평범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훨씬 더 흔하지만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인 인물, 즉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최악의 인종차별주의가 법률로 규정된 나치 독일에서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옳다고 쉽게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었다.
상황은 그에게 성공적인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그는 그 기회를 잡았다.
히틀러의 ‘최종 해결’ 정책은 아이히만이 성공할 수 있는 기회, 다시 말해 그 자신이 잘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좋은 기회였다.
이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어서 아렌트를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녀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있었다고 주장했을 때 그의 말이 진심이라고 느꼈다.
일부 나치와 달리 아이히만은 유대인에 대한 강한 증오심에 내몰린 것 같지 않았다.
수많은 나치들이 나치 경례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길거리에서 유대인을 때려 숨지게 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지만,
아이히만은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치의 공식 노선을 택해서 받아들였다.
그보다 훨씬 더 나쁜 것은 수백만 명을 죽음으로 내모는 데 일조했다는 점이다.
수년 동안 그가 한 일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를 듣고 있을 때도 그는 자신이 한 일의 잘못된 점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어떤 법도 어기지 않았고, 스스로 누군가를 직접 죽이거나 다른 사람에게 대신 부탁한 적도 없었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행동했을 뿐이었다.
그는 법을 준수하도록 양육되었고 명령을 따르도록 훈련받았다.
주변의 모든 사람이 그와 똑같이 행동하고 있었다.
타인의 명령을 받음으로써 그는 자신이 수행한 일상 업무의 결과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지 않았다.
아이히만은 사람들을 더럽고 허름한 객차에 몰아넣는 모습을 보거나 집단 살상이 벌어지는 강제수용소를 방문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법정에서 자신은 피를 보는 것이 두려워서 의사가 될 수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손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가 묻어 있는데도 말이다.
그는 자신의 행동과, 그 행동으로 인해 실제 사람들에게 발생하는 결과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체제의 산물이었다.
아이히만은 타인의 감정을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재판 내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기만적인 소신을 고수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아이히만은 자신은 단지 법을 지켰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 최선의 방어책이라고 결정한 것 같았다.
만약 그렇다면 그는 아렌트의 견해를 받아들인 셈이었다.
아렌트는 자신이 아이히만에게서 본 것을 설명하기 위해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어떤 것이 ‘평범하다’는 것은 흔하고 따분하고 추종적이라는 것이다.
아이히만의 악은 악마의 악이 아니라 관료, 즉 관리자의 악이라는 점에서 평범하다고 아렌트는 주장했다.
아렌트의 철학은 그녀 주변에서 벌어진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녀의 철학은 최근의 역사나 체험한 사건과 연결되어 있었다.
아렌트는 자신이 본 것으로부터 전체주의 국가의 악과, 그 악이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에 저항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보다 더 일반적인 설명을 전개시켜나갔다.
그 시대의 많은 나치와 마찬가지로 아이히만은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지 못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규칙에 의문을 제기할 만큼 용감하지 못했다.
그는 단지 그 규칙을 따르는 최선의 방법을 찾았을 뿐이다. 그는 상상력이 부족했다.
아렌트는 그를 천박하고 어리석다고 평했다. 하지만 그런 것 역시 일종의 행위일 수 있었다.
만약 그가 괴물이었다면 무서운 존재였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괴물은 흔하지 않으며 대개는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어쩌면 더 무서운 것은 그가 아주 평범해 보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음으로써 인류에게 알려진 가장 사악한 행위 가운데 일부에 동참했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그의 범죄행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는 비도덕적인 명령에 순응했다.
그리고 아렌트가 생각하기에 나치의 명령에 복종한 것은 ‘최종 해결’ 정책을 지지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받은 명령에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고 그 명령을 수행함으로써 그는 대량 살상에 가담했다.
비록 그의 관점에서는 열차 시간표를 만들었을 뿐이라고 해도 말이다.
재판 도중 어느 순간에는 마치 자신은 명령을 따름으로써 옳은 일을 했다는 듯이 임마누엘 칸트의 도덕적 의무론에 따라 행동했다는 주장까지 했다.
아이히만은 칸트가 인간을 존중하고 존엄하게 대하는 것이 도덕의 근본이라고 믿었다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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