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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cbc 2023. 5. 29. 00:28

 

논리학,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 정치학, 경제학, 생물학, 천문학 등 거의 모든 학문의 토대가 되었던 아리스토텔레스.

우리는 그를 학문의 제왕으로 기억한다.

스승인 플라톤의 왕국을 깨고 나와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한 그는 낮은 곳을 향해 흐르는 물처럼 결코 현실을 망각하지도, 떠나지도 않는다.

그가 추구했던 행복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이데아의 세계

 

 

플라톤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지상의 사물들 가운데에서는 진리를 찾을 수 없다고 보았다.

진리는 생성과 소멸 과정에 있는 사물의 배후에 있다.

이 진리는 앎에 의해 드러나는데, 플라톤은 이것을 ‘이데아(idea)’라고 불렀다.

이데아란 무엇인가? 보자. 여기 컴퍼스로 그린 원이 있다. 그냥 맨눈으로 보면 분명 완벽한 원이다.

그런데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니 웬걸, 선이 매끄럽지 않다. 울퉁불퉁 거칠다. 뭐냐? 이것을 원이라 했던가?

그리하여 더 정밀한 원을 얻기 위해 이번엔 가느다란 제도용 펜으로 그려보았다.

겉보기엔 깔끔한 원이지만 현미경 앞에선 어쩔 수 없다. 결과는 동일하다.

완벽한 원이란 없는 것이냐? 그렇다. 이 세상엔 없다.

이것이 플라톤의 생각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이 지상에 진리는 없다.

 

하지만 이데아의 세계엔 있다. 완벽한 원은 현실에는 없으나 인간의 사유에는 있다.

‘한 점으로부터 동일한 거리만큼 떨어진 점의 집합’을 생각해보자. 이것이 ‘이데아로서의 원’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원은 ‘이데아로서의 원’과 전혀 다른 것이냐?

아니다. 현실에 존재하는 원은 ‘이데아로서의 원’의 특질을 부분적으로 구비한다.

다시 말해 ‘이데아로서의 원’이 부분적으로나마 구현된 것이 현실의 원이다.

 

‘형이상학’의 탄생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에 입학한 것은 그의 나이 17세 때의 일이었다.

스승 플라톤은 인생의 풍찬노숙을 다 겪은 노인이었다.

사람들은 스승이 가리키는 하늘과 제자가 가리키는 땅을 대비하면서 스승과 제자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싸움이 전개된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을 따르는 열정적인 제자였다.

여든을 넘긴 플라톤이 유명을 달리하는 그날까지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카데메이아에서 줄곧 공부했다.

17세에 입문하여 스승이 타계하는 그날까지 무려 20년 동안 한 스승 밑에서 공부하는 것이 쉬운 일인가.

 

지칠 줄 모르는 근면과 뛰어난 재능으로 플라톤의 사랑을 받았던 청년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은 ‘아카데메이아의 예지’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로 특별히 아리스토텔레스를 사랑했다.

그가 지각하면 도착할 때까지 강의를 시작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스승과 다른 철학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게 된 것은 소아시아 여행 이후부터였다.

“친구도 소중하고 진리도 소중하지만 친구와 진리가 다르다면 진리를 존중하리라”

이때 아리스토텔레스의 친구는 스승 플라톤이었다.

 

 

플라톤의 선배 피타고라스는 사물의 양적 특성을 표현한 ‘수’를 사물로부터 독립시켰다.

피타고라스의 철학적 연출을 지켜본 플라톤은 ‘수’보다 더 강력한 군주를 등장시켰다.

‘이어 플라톤은 이데아보다 더 강력한 이데아, 이데아의 이데아, 즉 ‘선(goodness)의 이데아’를 무대 위로 올린다.

‘선의 이데아’가 신적 지위로 등극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이 연출한 ‘이데아’의 독재를 끝내고 존재하는 사물들이 저마다 자신의 발언을 하는 사물의 민주주의 시대를 연다. 

아리스토텔레스의 10가지 범주를 쓰면 모든 사물을 완벽하게 서술해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는 독재자가 없다.

그는 플라톤이 하늘 저 높은 곳으로 끌고 올라간 철학을 다시 지상으로 끌어내린 철인이었다.

인간을 호모사피엔스로 정의하는 오늘날의 관점은 이미 2400년 전에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만들어졌다.

인간은 분명히 어떤 쓸모 때문에 지혜를 찾는다.

학문은 늘 실용성과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인간에게는 앎을 추구하는 본성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진리 탐구는 그 자체가 목적이다.

 

‘정치학’, 스승의 이상국가를 비판하다

 

 

플라톤은 그의 《국가》에서 통치자들의 부정부패를 엄단하기 위해선 모든 통치자들의 사유재산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승 플라톤이 이상 사회 건설에 뜨거운 열정을 품은 철학자였다면 반대로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을 직시하고 이 현실을 움직이는 법칙을 찾아 나선 냉정한 과학자였다.

늘 하늘을 가리키던 스승의 손가락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의 손가락은 세상을 가리킨다.

‘스승님, 그게 아닙지요. 국가는 이해관계가 다른 여러 집단이 모여 어울려 사는 곳이어요. 국가는 가정이 아닙지요.’

 

플라톤은 이상적인 정치형태를 철인정치(哲人政治)에서 찾았다.

‘왕을 철인으로 만들라!’는 플라톤의 지상 명령은 왕을 도덕 군주로 개조하고자 했던 동양의 성리학과 정확히 일치한다. 

역시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적이었다. 그는 스승의 철인정치를 사양한다.

‘국가란 이해가 서로 다른 집단이 모여 어울려 사는 곳’이다.

독재는 좋지 않다. 그 어떤 특정 집단의 독재도 국가의 본성을 해친다.

부자들의 이익도 존중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이익도 존중하는 정체가 좋다.

부자들의 과두정과 가난한 사람들의 민주정, 두 정체의 좋은 점을 따른 혼합정이 바람직한 정체다.

세월이 너무 많이 흘렀다. 현대의 정치 시스템은 고대 폴리스의 정치 시스템과 완전 다르다.

하지만 이상이 아닌 현실에서 좋은 점을 뽑아 혼합하고자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용적 사고, 한번쯤은 배울 만한 것이 아닌가?

 

《시학》, 모방을 이야기하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시작은 소박하다. 그는 어려운 개념을 말하지 않는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이더냐? 그것은 ‘행복’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한 삶이 인생의 목적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에서 출발한다.

그러면 행복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행복을 부와 명예에서 찾기도 하고 쾌락에서 찾기도 한다.

세상 사람들이 쾌락과 명예를 좋아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아리스토텔레스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쾌락을 추구하는 삶은 노예나 짐승의 삶이지 인간의 목적이라 할 수 없다고 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의 조건으로 다음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행복은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한다. 

둘째, 행복은 활동이어야 한다. 

행복은 특정의 심리 상태가 아니다. 원하면 선택할 수 있고 언제든 반복할 수 있는 활동이어야 한다.

셋째, 행복은 인생 전반에 걸쳐 진행되는 지속적인 활동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활동이 행복을 주는 활동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권유한다. ‘인간다운’ 활동을 선택하라.

진실한 사람, 유머러스한 사람, 온화한 사람, 포부가 큰 사람이 되라.

하지만 행복한 인생에 대해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친구다.

친구란 ‘두 개의 몸에 깃든 한 개의 영혼’이다. 친구 없는 삶은 불행하다.

쾌락 때문에 사귀는 친구가 있고, 이익 때문에 사귀는 친구가 있다.

젊은이는 쾌락 때문에 친구를 사귀고 노인은 이익 때문에 친구를 사귄다.

하지만 젊음이 시들면 함께 놀던 친구도 소원해지고 얻을 게 없으면 우정도 끝난다.

따라서 가장 완전한 친애는 좋은 사람들, 탁월한 사람들 간의 친애다.

인격과 인격이 맞닿아 울림을 주는 친구, 이런 친구를 만날 때 우리는 행복하다.

마지막으로 행복한 삶은 관조에 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그는 특유의 철학자적인 견해로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대미를 장식한다.

 

행복한 삶은 탁월성에 따른 삶이다. 인간의 탁월성은 지성에 있다. 지성의 활동을 우리는 관조라고 하는데, 관조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순수하고 견실하며 자족적인 즐거움을 준다. 관조는 최선의 활동이고 영속적 활동이며 즐거운 활동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관조는 신적인 활동이다. 지성을 따르는 삶이 가장 좋고 가장 즐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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